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Jan 06. 2020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오늘 골든글로브 시상식 중계를 보고 느낀 점들

시상자로 나온 브래드 핏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아내와 함께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보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이긴 하지만 사실 이런 시상식을 보고 있자면 부러운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일단 사회자가 굉장히 지적이고 유머러스하다. 우리나라 사회자들처럼 실수가 잦지 않고 웃음으로 때우지도 않는다. 유머 포인트를 정확히 계산하고 나와 속사포처럼 멘트를 던진다. 모인 게스트들을 들었다 놨다 하지만 마틴 스콜세지도 메릴 스트립도 기꺼이 거기에 몸을 맡기며 활짝 웃는다.

두 명씩 등장하는 시상자들은 소개 멘트와 짧은 연기로 후보작이나 배우들을 아주 경제적으로 소개하고 곧장 수상작을 발표한다. 괜히 어버버 하거나 되지도 않는 이상한 농담을 해서 마가 뜨게 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

수상자들은 호명되면 주변 친구들과 기쁨을 나누며 무대로 걸어 나와 준비했던 수상소감을 말한다. “어머, 어떡해.”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져서요...” 같은 멘트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가끔 정치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한다. 오늘은 호주 산불 때문에 곤란을 겪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수상자가 많았다. 수상자 러셀 크로 같은 경우엔 호주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돌보느라 아예 시상식에 나오지 않고 메시지만 전했다. 지구 온난화 얘기도 여러 번 나왔고 주최측이 채식 식단을 준비한 것에 대해 감사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게이로서 일찍이 성소수자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했던 엘런 드 제너러스가 공로상을 받기 직전에 나왔던 바이오그라피 필름은 편집이 정말 기가 막혔다. 더구나 시상자로 나온 후배도 여성 게이였고 그는 엘런 덕분에 자신이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시상 취지에 딱 맞는 기획이 아닐 수 없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말이 있다. 이런 시상식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오랫동안 축적해 온 문화적 전통의 토대가 얼마나 튼튼한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영화를 만든지 백 년이다. 그러나 시상식의 품격이나 짜임새는 아무래도 아직 아쉽다.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으로 뽑히자 간단한 소감을 영어로 말한 뒤 자세한 소감은 통역자를 통해 얘기하겠다고 하던 봉준호 감독은 여유가 넘치고 멋졌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같은 사람과 함께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생각한다고 했는데 통역이 알모도바로 감독 이름을 살짝 빼먹어 아쉬웠지만 “우리는 모두 영화라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다고 생각한다”는 수상 소감은 진짜 좋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90년생이 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