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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07. 2020

약간 헐렁해서 더 기분 좋은 추리극

[나이브스 아웃]

오늘 아침 조조영화로 [나이브스 아웃]을 보았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살인극처럼 고전적 탐정이 나오는 추리극이라는 것만 알고 들어갔는데 오프닝부터 귀를 휘감는 경쾌한 바이올린 선율이 기분 좋은 '후던잇' 한 편을 감상할 것이라는 예감을 선사했다. 노회한 베스트셀러 소설가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가족들 사이에서 살인범 찾기 게임이라는 이 익숙한 장르물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10년이나 매만졌다는 라이언 존슨 감독(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감독이다)의 연출력과 다니엘 크레이그, 아나 드 아르마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등 명배우들의 호연으로 꽤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내 아내는 칼이 나오는 영화를 잘 못 보는 편이라 이런 영화는 대개 나 혼자 보는 편인데, 이 작품은 제목에도 칼이 들어있고 영화 속에도 칼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정작 칼 때문에 무서운 장면은 전혀 없다. 더구나 살인극인데 피라고는 마르타의 운동화에 튄 한 방울밖에 나오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살인이나 죽음이라는 심각한 소재보다는 소설가의 죽음 뒤 바뀌는 가족들의 편협한 모습이나 범인을 찾으려 노력하는 탐정과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간호사 마르타 등의 연기와 캐릭터를 즐기는 게 더 좋은 감상법이라는 얘기가 되겠다. 그렇다고 시나리오가 후지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다니엘 크레이그가 분한 브르와 블랑이라는 탐정이 똑똑하지만 약간 허당기가 있는 것도 마음에 들고 마르타가 거짓말을 하면 토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도 좋다. 맨 마지막에 이런 설정이 만들어낸 반전은 영화의 백미가 된다.

아마 출연진 모두 매우 즐거운 분위기에서 영화를 찍었을 것 같다. 어쨌든 이 영화는 선의를 가진 주인공이 억울함에 빠지지 않고 성공하는 흐뭇한 이야기이고 흥행에도 성공했다고 하니까. 맨날 가면 뒤집어쓰고 방패나 들고 다니던 크리스 에반스가 저렇게 캐릭터 연기를 잘했나 하고 놀라는 재미도 있고, 제이미 리 커디스야 예전부터 못 생긴 편이었지만 1980년대 미국의 TV스타 중 대표적 미남이었던 돈 존슨이 어느덧 저렇게 늙었구나 하고 혀를 한 번 차는 것도 헐리우드 키드들에겐 영화 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작은 선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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