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 영화엔 어떤 숫자가 나온다. 거의 마지막 즈음 전시장에서 마주친 초상화의 주인공이 들고 있는 책에 표시된 숫자. 나는 그 숫자를 본 순간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환희가 섞인 통증이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극장을 나서며 '때로는 며칠 간의 강렬한 사랑의 기억이 평범한 나머지의 일생을 견디게 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결혼용 초상화를 보내야 하는 귀족 여성 엘로이즈에게 여성 화가 마리안느가 온다. 엘로이즈의 어머니는 딸이 초상화의 모델이 되기를 거부하니 그녀 옆에서 '산책 친구'라고 거짓말을 하고 얼굴을 잘 관찰한 뒤 그 기억만으로 초상화를 완성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야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남다른 시선을 주고받던 두 여성은 순식간에 작은 비밀을 허문 뒤 서로의 얼굴과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고 부지불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초상화가 완성되기까지 남은 6일이 전부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퀴어 영화지만 퀴어라는 상황보다 계급과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간절함과 순수함에 방점을 찍는다. 여기에 임신한 하녀 소피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그들이 만들어내는 평등과 연대의 힘을 팽팽한 연기와 연출로 보여준다. 세 사람이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순간은 '귀족- 평민-하녀'라는 구분조차 없어지고 각자의 주체적인 시각으로 '오르페 신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나누기도 하는데(어쩌면 오르페가 뒤돌아선 것은 에우리피데스가 원해서일지도 몰라) 이는 그들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아주 유효 적절하게 쓰인다. 이 영화는 칸느 영화제 각본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도 봉준호의 [기생충]과 함께 외국어영화상을 다투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에 그려진 두 여성의 로맨스와 섹스는 아름답기 그지없게 그려지는데 18세기라는 시간적 배경과 갇힌 섬이라는 자연적 배경, 그리고 자신의 이름으로는 전시회에 출품조차 할 수 없는 여성 화가의 처지라는 시대적 배경 등은 영화의 입지를 좁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전적 품격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캔버스에 스치는 석필 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 등은 그 어떤 배경음악보다 아름답다.
그동안 주인공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는 인상적인 롱테이크로는 차이밍 량의 [애정만세]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이 최고였는데 이제 거기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3악장’을 오케스트라로 처음 접하며 환희에 젖는 엘로이즈의 얼굴을 보라. 그녀는 극장에서 마리안느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섬에서의 6일을 연료 삼아 나머지 생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짧지만 강렬한 사랑의 기억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그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