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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01. 2020

작가가 직접 찍어야만 작품인가,라고 묻는

오중석의 전시회 <UNTITLED: Oh Joong Seok>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사진을 찍는 시대에 사진작가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오중석 작가는 ‘작가가 직접 찍어야만 그의 작품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듯하다. 물론 전시회에 직접 찍은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중석은 우연히 발견된 옛날 필름통 속의 작품을 재해석하거나 인공위성이 찍은 지도 사진을 이어 붙임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작가의 초대를 진즉에 받아 놓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가지 못하고 있던 오중석의 사진전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삼일절인 전시 마지막이 다가와 이러다가는 큰 후회를 할 것 같아 이월 마지막 날인 토요일 오후에 잠실 에비뉴홀 아트홀로 갔다.

셀럽들과의 협업이나 상업 사진 등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오중석 작가지만 이번 전시회 <UNTITLED: Oh Joong Seok>에서는 모델이나 패션에 관한 사진을 한 장도 찾아볼 수 없다. 전시회 제목도 무제(UNTITLED)로 함으로써 해석의 폭을 무한대로 넓혀 놓았다. 이는 미술관에 변기를 가져다 놓았던 뒤샹이나 마를린 먼로의 사진을 프린트해서 갤러리에 걸어놓았던 앤디 워홀이 했던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오중석은 인공위성이 찍은 서울과 맨해튼, 파리, 밀라노 등의 모습을 재구성한 <도시> 시리즈,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촬영한 대형 프레임의 <꽃> 시리즈, 그리고 통째로 구입한 1950~60년대 필름들에서 찾아낸 사진들을 재가공한 <수영장> 시리즈까지 약 40여 점을 선보인다.

아내와 함께 한참 작품들을 둘러보고 도록을 구입한 뒤 나와 바로 옆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미리 연락을 했던 오중석 작가가 도착해 인사를 나누고 다시 화랑 안으로 들어가 작품 설명을 들었다.  우선 이전에 오 작가의 스튜디오에서도 보았던 옛날 필름통 속에서 찾아낸 수영장 사진들이 반가웠다. 그는 외국의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산 필름통 속의 사진들을 인화해 재가공하는 작업을 처음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밤새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벼룩시장에서 시작된 수집은 이베이로 이어져 누가 언제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사진들을 계속 발굴했고 거기에 '베이비 블루' 등 자신만의 컬러를 입혀 새로운 작품들로 완성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런 사진들 중 이미 팔린 작품을 소유자에게 다시 빌려와 걸어놓은 것도 있다고 했다. 작업을 한 작가도 그렇지만 이런 작품들을 남들보다 먼저 알아본 구입자들의 혜안 또한 부러운 일이었다.

꽃 시리즈는 인물이나 패션 사진을 찍으며 사람이라는 피사체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피로감을 치유받는 즐거움을 주었던 작품들이라고 한다. 꽃은 작가의 의도대로 자세를 취하지도 않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 프레임 안에서 완벽한 존재로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작가에게 희열을 선물한다. 오중석은 장미 사진을 가리키며 "정말 많은 장미 사진을 찍었지만 어느날 이 장미 사진을 찍고 나서 '아, 내가 이보다 더 좋은 장미 사진을 찍을 수가 있을까' 같은 느낌을 잠깐 받은 적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마도 남들에게 늘 좋은 사진이라는 소리를 듣는 작가라도 자신이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을 완성한  순간의 희열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놀라운 작품은 바로 <도시> 시리즈다. 전시회에 걸린 작품 중 가장 큰 것도 서울의 모습을 인공위성으로 찍은 사진을 이어 붙인 작품이다. 위성사진이 어떻게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오중석은 '카메라의 발전에 대한 도전'으로 이런 프로젝트를 구상했다고 말한다. 카메라는 늘 새로운 기술과 화소를 자랑하며 '이게 최신'이라 말하지만 곧 또 다른 첨단 기술에 자리를 내준다. 오중석은 그런 기술의 발전에 기대 갈 수밖에 없는 작가들의 처지에서 벗어나 궁극적인 어떤 '완성형'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지도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구글 어스에서 다운 받은 지도 사진을 지속적인 리터치로 화소를 높인 뒤 이어 붙여서 확대해도 망점이 손상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오중석은 그런 사진들을 축소해 계속 이어 붙임으로써 '확대해도 망점이 손상되지 않는' 거대한 도시를 축소 재현해 내는 야심 찬 작업에 도전한 것이었다. 파리는 한 장에 30기가짜리 사진 600장을 이어 붙이는 데 한 달이 걸렸는데 서울은 1,200장을 붙이면서도 오히려 시간이 줄었다고 한다. 몇 번의 시행착오와 익숙함을 통해 작업 능률이 좋아진 것이다. 관객들은 거대한 서울 사진을 보면 신기해하는 동시에 자신이 사는 동네부터 찾아본다고 한다. 물론 우리도 성북동이 어디쯤이야, 하면서 손가락으로 지도를 가리켰다. 전시회에 걸린 서울의 사진은 2017년 겨울 어느 맑은 날 중 이틀을 택해 작업한 것이라고 한다. 오중석 작가는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곳은 작업을 했다가도 지워버린다고 한다. 실제로 파리나 맨해튼의 지도에는 페인팅으로 언저리를 지운 흔적이 있다. 내가 파리의 지도를 유심히 살피다가 빨간색 블록들이 눈에 띄길래 이건 뭐냐고 물으니 커피숍의 차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사진을 조금 더 확대해서 그 커피숍으로 들어가 앉아보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다. 사진 속으로 마음이 빨려 들어가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오중석 작가는 외국에서도 전시회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전혀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이 작업이 어떤 평가를 받을까 궁금한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마음에서 오중석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국내 전시회를 해볼까 하는 아이디어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새로 이사 가는 집의 내부 수리가 끝나면 하루 그를 초대하겠다고 말했고 그는 도록에 있는 서울 지도들을 이어 붙이면 전시회와 똑같은 작품이 되니 한쪽 벽에 서울 지도로 도배를 해놓으면 그때 와서 사인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3월 1일에 끝나기로 했던 전시회는 4월 1일까지로 한 달 더 연장되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이런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한 달 남았다. 딱 하루만 시간을 비워서 잠실역으로 가시라.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사진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게다가 입장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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