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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03. 2020

뜻밖에도 큰 위로가 되어준 영화

작가 미상

불행을 굳이 분류해 보자면 개인적 불행과 시대적 불행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 전쟁이나 혁명 같은 격변의 시기에는 두 가지 불행이 한꺼번에 오기 마련이다. 독일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영화 [작가 미상]은 이러한 거대 불행을 극복하는 방법은 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자세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집념이라는 것을 '현존하는 가장 비싼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실화를 통해 보여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모 엘리자베트와 화랑을 다니며 예술작품을 접하곤 했던 쿠르트는 2차 세계대전 중에서도 무자비한 폭격이 행해진 곳으로 유명했던 드레스덴에서 가족을 잃는다. 특히 나체로 바흐의 피아노곡을 치거나 버스 기사들에게 한꺼번에 경적을 울려달라고 부탁하고는 그 소리에 온몸을 맡기며 감성을 충전하는 등 남다른 예술성을 뽐내던 이모는 졸지에 정신병자로 몰려 유태인, 장애인,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가스실에서 참혹하게 살해되고 만다. 이 과정에서 훗날 만나게 될 어떤 의사가 그의 운명에 끼어든다. 전쟁이 끝난 학교에서도 철저히 사회주의에 복무하는 프로파간다만 그리느라 지쳐 있던 쿠르트는 우연히 학교에서 엘리자베트 이모와 꼭 닮은 여학생 엘리를 만나 불 같은 사랑을 나누고 결국 그녀와 서독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생각해 보니 줄거리를 더 늘어놓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다만 순혈주의에 경도된 나치들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악행을 저지르는 장면들에서는 나도  한숨을 내쉬며 분개했지만 그 와중에도 경쾌하게 피어나는 쿠르트와 엘리의 사랑과 섹스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출세가 보장된 동독의 생활을 버리고 서독으로 간 쿠르트의 방황과 극복의 과정이었다. 당시 새로운 예술들이 봇물 터지듯 출현하는 세계적 상황에서 쿠르트는 잠시 길을 잃는다. 동독에서는 통하던 그림 실력도 여기서는 그리 인정을 받지 못하고 친한 동료는 "그림은 이제 한물갔어. 다른 걸 해야 해."라는 말까지 한다. 그의 충고대로 물감을 흩뿌리는 점묘파도 해보고 면도칼로 캔버스를 찢는 행위예술도 해보고 붓 대신 발자국으로 찍어도 보고 하던 그는 "이 그림들엔  네 것이 없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너 만의 것을 해."라고 일갈하는 괴짜 스승 페르텐 교수의 말을 듣고 그동안 했던 작품들을 모두 불태운다.

빈 캔버스를 앞에 두고 아침부터 밤까지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쿠르트의 모습은 너무나 애처롭고 안쓰러웠다. 그러나 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장면에서 가장 큰 위로를 받았다. 나 또한 빈 종이나 컴퓨터 화면을 노려보며 하루 종일 아무것도 생산해 내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하는 경험을 너무나 많이 해봤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쿠르트가 자짠, 하고 갑자기 뭔가를 이루어냈으면 오히려 많이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없이 실패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새로운 것에 대한 맹목적인 추앙이나 남들 흉내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소재는 멀리 있지 않았다. 어릴 적 엘리자베트 이모와 함께 찍은 사진도 있고 신문에 난 나치 의사 기사도 있었고 엘리 아버지의 증명사진도 있었다. 그는 그 사진들에 자신만의 기법을 더해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다만 그가 그린 사람들의 이름을 지움으로써 갤러리들에게 작품은 영원한 '작가 미상'으로 남는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지나간다. 데뷔작 [타인의 삶]에서도 느꼈듯이 흡입력이 뛰어난 스토리와 유장한 플롯, 선한 의지로 달려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영화 전반에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후반부에 쿠르트가 그리는 그림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멋지고 절묘해져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고 심지어 악역인 시반트 교수가 감옥에서 살아나는 반전 장면이나 '엘'로 시작하는 두 여성의 당당한 나체, 그리고 절대로 모자를 벗지 않는다고 소문난 페르텐 교수가 쿠르트에게 충고를 마치고 모자를 벗는 장면까지 한 영화에 이렇게 많은 감동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영화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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