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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12. 2020

우리와 똑같은 짓을 하는 부부를 만나다

성북동집 칼국수 칼만두 이야기

이사 갈 한옥집 공사 현장에서 '이웃집 할머니 소동'을 겪으며 혼이 쏙 빠진 아내와 나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성북동 큰길 쪽으로 걸어 올라가다가 성북동집에 가서 만둣국이나 먹자고 합의를 했다. 한 시가 조금 넘어 가게에 들어서니 방금 손님이 나간 상인데 아직 치우질 못했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내가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나오자 자리에 앉은 아내가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나는 칼국수, 아내는 칼만두를 시켰다.

음식 두 그릇이 나왔는데 둘 다 똑같이 국에 잠겨 있어서 어느 게 만둣국이고 어느 게 칼국수냐고 물었더니 아줌마도 만두가 안 보여서 나도 잘 모르겠다고 하며 웃었다. 아내 그릇에 숟가락을 넣어보니 만두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내 앞에 있는 그릇이 칼국수다. 아내가 만둣국에서 만두 한 개를 꺼내 작은 접시에 담아줬다. 나는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아내는 자기가 혼자 먹기엔 칼만두 양이 많다고 하면서 만두를 다시 내쪽으로 밀었다. 나는 칼국수 국물을 조금 떠먹고 만두부터 먹었다. 뜨끈한 국물 맛이 속을 깊게 풀어주었다.


다 먹어갈 때쯤 우리 옆으로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전화기로 "네일 언니야, 나 내일 오전에 일 안 하고 언니 한 데 가서 네일이나 받을까 하는데..."라고 말하며 앉았다. 손톱관리를 받을 계획인 모양이었다. 조금 있다가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맞은편에 와서 앉자 여자분은 오늘 오후 3시쯤에 네일숍을 방문하기로 약속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부부인 듯했다. 아내는 칼만두를 시키고 남편은 칼국수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자 아내는 자기 만둣국에서 만두 한 개를 꺼내 작은 접시에 담아 남편에게 내주었다. 남편은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아내는 자신이 다 먹기엔 칼만두 양이 많다고 하면서 만두를 남편 쪽으로 내밀었다. 남편은 칼국수 국물을 한 번 떠먹더니 만두부터 먹기 시작했다.

나는 방금 우리가 하던 짓을 그 부부가 똑같이 하는 것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아내에게 아까 옆에 앉은 부부가 우리랑 똑같은 짓을 하더라고 했더니 아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웃었다. 그 부부가 복을 많이 받아서 지금보다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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