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란함의 근원은 언제나 돈보다 사람!

도시형 한옥 집수리 4일째!

by 편성준




오전에 성북동의 집수리 현장 골목으로 들어서니 어제 인부들에게 화를 내며 난리를 치셨던 그 노인이 또 소리를 지르고 계셨다. 아내와 내가 지나가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아침은 드셨냐고 물었더니 "나갔다가 지금 들어오느라 아무것도 못 먹었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답을 하느라 템포를 놓쳤는지 그때 잠깐 쉬며 우리를 쳐다보다가 이내 다시 허공에 대고 뭐라 뭐라 계속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거의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누구에게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냥 억울하고, 화가 나고, 그러는 게 아니라고만 했다. 집안으로 들어서 왜 저러시냐고 목수님과 인부들에게 물었더니 모두 쓴웃음을 지으며 "아까부터 혼자 저래요. 말대꾸하지 말아야 해요."라고만 하셨다. 그들의 웃음 속엔 신경질보다는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묻어 있었다. 나도 어쩌다 저분은 저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마음이 짠해졌다.


아직도 철거 작업이 한창이었고 골목엔 부대에 담은 시멘트와 흙벽 폐기물들이 그득했다. 오늘은 가스배관 담당 사장님이 오셔서 각 공간마다 돌아다니며 배관 설계를 하고 계셨다. 아내는 임 목수님에게 욕실의 '타일 욕조'에 대해 물었는데 목수님은 욕조까지 타일로 하는 건 자신 없다고 했다. 방수나 보온 등을 생각할 때 욕조는 일반형을 쓰고 욕실 벽과 바닥만 타일로 하는 게 더 안전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그렇게 하기로 전격 합의를 했다. 처음엔 원하는 것을 마음껏 얘기해보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더 좋은 방안이 있으면 즉시 방향을 선회하는 게 임 목수님과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었다. 더구나 이번엔 한옥 공사인만큼 우리는 전적으로 임 목수님의 의견을 경청하는 게 맞다.


임 목수님은 재미있는 분이다. 4대째 내려오는 목수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목수가 싫어서 대학에선 다른 걸 전공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목수가 되고 싶어 다시 공부를 하고 한옥 분야로 뛰어든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우리가 임 목수님을 만난 것은 로버트 파우저 교수님 덕분이었다. 3개 국어 이상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언어천재 '파 교수님'은 아내가 기획한 [미래 시민의 조건]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는데(박근혜 국정농단 때 나와 화제가 되지 못해서 그렇지 정말 유익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그때 교수님의 서촌 한옥집 '어락당'을 지은 황인범 목수님에게서 임정희 목수님을 추천받은 것이었다. 임 목수님은 황 목수님과 함께 오랫동안 한옥을 전문으로 작업해 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한옥에 대해서 많이 알고 애정도 남다르다. 그런데 우리의 첫 개인주택인 산꼭대기 '성북동 소행성'에 이어 드디어 평지에 있는 한옥 개조 작업까지 함께 맡아주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전적으로 임 목수님에게 모든 걸 일임한 뒤 우리 부부는 시시때때로 그를 괴롭히기만 하면 되는 걸로 각자의 역할을 정했다.


골목 맞은편 한옥에 사는 디미방 사장님 부부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디미방은 우리가 성북동으로 처음 이사를 올 때부터 단골이었던 작은 음식점이었는데 얼마 전 가게 문을 닫았다. 사장님 부부가 이 근처에 사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우리 집과 같은 골목일 줄은 몰랐었기에 정말 반가웠다. 사장님 집에 들어가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 분을 모시고 우리 공사 현장으로 와서 구경을 시켜드렸다. 여자 사장님은 자기네 집보다 더 넓어 보이고 구조도 너무 튼튼해 보여서 좋다고 말하며 공사 잘 마치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마당에 가득 찬 건축 폐기물들 사이로 구들장들이 많이 나왔길래 아내가 마당에 그걸 깔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뒷마당도 그때 나왔던 구들장을 깔아서 만들었다. 그러나 인부 중 한 분은 그게 그을음이 많이 묻어 있어서 비가 오면 검은 물이 솟구쳐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를 했고, 임 목수님은 그제 마당의 꽃과 나무 때문에 오셨던 동네 조경업체 사장님에게 사진을 전송해서 한 번 의논을 해보라고 했다.


임 목수님이 트럭을 대는 곳에 갑자기 나타난 빌라 사장님 얘기를 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철거물을 싣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골목 입구에 잠깐 트럭을 대야 한다. 그런데 어제는 트럭 세운 곳 앞의 빌라 사장님이라면서 스포츠형 헤어스타일의 50대 후반 남자분이 나타나서 '인사도 안 하고 주차를 하느냐'라고 뭐라 뭐라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집주인에게 인사를 하러 오라는 말을 전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 사장님을 만나러 빌라로 가보니 도대체 어디로 가야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건지 도대체 알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부동산 사장님에게 찾아가 혹시 그 빌라 사장님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그 사장님을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라며 무작정 매달렸더니 부동산 사장님은 결국 자신의 동네 인맥을 동원해서 '그 사장님은 이 곳에 살지 않는다, 대화가 잘 통하는 분은 아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등등 간략한 프로필을 알려 주시기에 이르렀다. 한 마디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한숨을 내쉬며 "가는 곳마다 함정인데 그게 대부분 사람"이라며 웃었다. 골목에서 소리를 지르던 노인부터 자신에게 인사하러 오라 으름짱을 놓는 빌라 사장님까지, 생각해 보면 모든 심란함의 근원은 언제나 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북동의 명물로 떠오르고 있는 커리 전문점 '카레(CURRY)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아내와 나는 '오나가나 사람을 제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믿었다가 상처 받는 것도 대부분 사람 때문이고, 사람 말을 함부로 옮겼다가 사달이 나는 경우도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보니 오늘은 주제가 계속 '사람'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아내는 침을 좀 맞아야겠다고 했다. 요즘 저녁마다 머리가 아픈 증세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한의원에 가서 맥도 한 번 짚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내려오는 길에 있는 조그만 빵집에 들어가 목수님과 인부들의 간식으로 앙버터빵을 네 개 사서 현장으로 가 전해드렸다. 마침 현장엔 물받이 공사하시는 사장님이 와서 기와지붕 물받이 상태를 점검하고 계셨다. 우리는 "잘해주세요, 사장님."이라고만 하고는 얼른 현장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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