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서 사는 선배가 찾아오다

도시형 한옥 집수리 10일째

by 편성준

느닷없이 인터넷과 와이파이가 끊겼다. TV도 안 나오고 스마트폰의 인터넷도 먹통이 되었다. 아내가 TV 밑의 기계들을 눌러보고 선을 뺐다가 꼽고 해 보았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KT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하라는 대로 다 해 보아도 별무소용이었다. 나도 아내를 따라 기계들을 두들겨도 보고 선을 뺐다가 다시 꼽기도 해 보았으나 똑같이 헛수고일 뿐이었다. 결국 A/S맨을 부르기로 했다. 우리 탓이 아니라 이 동네 전체에 무슨 이상이 생긴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우리는 KBS1 FM을 틀어놓고 늦은 아침을 먹었다. 클래식 방송을 틀어놓으니 마치 '타다'에 탄 것 같다고 내가 말했다.

오늘은 서촌에 사는 김성준 선배가 한옥 수리하는 걸 보러 오기로 했다고 한다. 김성준 선배는 파우저 교수님이나 온수진 씨 부부 등과 함께 서촌이라는 동네에서 함께 살던 분인데 다른 사람들이 서촌을 떠난 지금도 여전히 그 동네 한옥 '취아당'에서 살고 있다. 동네 안경점에 가서 새로 맞춘 안경을 찾은 뒤(쓰던 안경이 고장 나 남대문에 있는 안경점에 수리를 맡겼는데 그 안경을 본사로 보내는 바람에 수리 기간이 한 달로 늘어났다고 하기에 예전 뿔테 안경을 찾아 썼는데 안경 도수가 맞질 않아 작업용 안경과 번갈아서 써야 했다. 먼 곳을 볼 때와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의 안경이 달라서 고생을 하던 와중에 이미 고장이 나 있던 뿔테 안경의 다리가 마스크 줄에 걸려 또다시 덜렁덜렁해지는 바람에 또 아내에게 야단을 맞고 아내가 예전에 쓰던 여벌의 안경테에다 새로운 렌즈를 동네 안경점에서 급하게 하나 맞추었는데 그 안경 제작이 완료되었다고 연락이 와서 찾으러 간 것이었다. 아무튼 손이 많이 가는 남자라고 아내에게 또 핀잔을 들어야 했다) 메로나, 비비빅 등 아이스케끼를 사 가지고 한옥 현장에 들어섰다.

금요일까지의 깎기 작업이 끝나고 오늘부터는 목공 작업이다. 임 목수님이 마루에서 하얗게 때를 벗겨낸 나무 기둥과 벽에 오일을 바르고 있었다. 작업을 중단하고 다섯 명이 아이스께끼를 먹고 있는데 김성준 선배가 들어섰다. 예전에 서촌에서도 매일 보다시피 한 사이라 임 목수님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고 김치열, 김정국 목수님과도 인사를 했다. 김성준 선배는 한옥이 매우 반듯하고 튼튼해 보인다고 전체적인 느낌을 얘기했다. 목재들이 실하고 마당에 햇볕도 잘 들어서 좋다고도 했다. 우리가 대략적인 집 구조를 설명해 주었는데 한옥이 아파트에 비해 방음이 잘 안 되는 편이니 게스트룸과 살림집 방 사이의 방음을 신경 쓰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농담 삼아 "사람들이 게스트룸에 와서 큰 소리로 섹스를 하진 않겠죠?"라고 했더니 임 목수님이 무안하게 야한 소리를 한다고 화를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성준 선배와 나는 "들리면 들어야지 뭐." "아예 벽에다 귀를 대자고."라고 하며 계속 낄낄댔다. 결국 임 목수님이 방음에 더 신경을 써서 공사를 해주기로 했다

목수님들이 작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그만 나가자고 해서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김성준 선배가 막걸리나 한 잔 하자고 해서 구포국수로 가 홍어삼합과 막걸리를 시켰다. 아내는 김 선배에게 마당에 심을 나무에 대한 조언을 구했고 김 선배는 자신이 어떻게 나무를 구하는지 구체적인 노하우를 전해주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 뒷마당에 있는 배롱나무와 앵두나무도 김 선배가 선물로 심어주고 간 것이었다. 아내는 매화와 살구 중 하나를 심고 싶다 했고 김성준 선배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신중하게 선택하면 된다고 했다. 내가 "살구는 어디 노래에 나오지 않아? 나의 살던 고향은...같은 거."라고 말했더니 아내가 고향의 봄을 계속 불러 보라고 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아, 살구꽃!" 아내와 김성준 선배가 바보 같은 나를 보며 빙글빙글 웃었다.


우리 부부는 갑자기 한옥을 사서 수리를 하게 된 과정을 얘기했고 김 선배는 서촌에 살면서 파우저 교수님이나 온수진 씨 부부 등을 만나게 되었던 시절 얘기를 했다. 동네에서 누구 한옥을 지으면 매일 가서 구경을 하고 참견을 해서 '저 사람은 누군데 매일 오냐?'라는 소리를 들었고 결국은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내가 안경을 또 맞춘 것에 대해 설명하면서 손이 많이 가는 남자라며 웃었고 그 덕분에 내 별명은 새우깡(손이 가요, 손이 가, 자꾸만 손이 가)이 되어버렸다. 막걸리를 일곱 통 정도 마셨을 때 A/S 기사가 집으로 온다는 시간이 되어 나 혼자 집으로 올라왔다. 올라오기 전에 화장실에 갔다가 계산을 하려고 했더니 김 선배가 이미 돈을 낸 뒤였다. 나는 "아니, 왜 돈을 내셨어요?"라며 화를 내는 척했다.

역시 예상대로 우리 잘못이 아니고 동네 어디선가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 것이었다. A/S기사분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애를 써 준 덕분에 다시 인터넷과 와이파이가 빵빵해졌다. 아래로 내려가 보니 두 사람은 구포국수에서 나와 성북동콩집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김성준 선배가 서촌 사람들과 술 약속이 있다고 하길래 우리도 같이 가기로 했다.

서촌에 아는 후배들이 새로 문을 열었다는 곱창구이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기획실장을 오래 했던 강원모 감독님, 서촌 그 책방을 운영하고 계시는 하영남 사장님, 온수진 조유겸 부부, 이웃에 사는 하 이사님 등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다들 우리 부부의 한옥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져주고 축하해 주어서 기뻤다. 신나게 술을 마시고 또 다른 가게로 옮기려다가 서점으로 가서 맥주나 좀 더 마시지는 얘기가 나와 모두들 ‘서촌 그 서점’으로 몰려갔다.

이 서점은 사장님이 책을 꼼꼼히 읽고 포스트잇으로 코멘트를 해주는 서비스가 인상적인 곳이다. 아내는 전부터 사고 싶었다던 [디자이너 마인드]라는 책을 사달라고 했고 나도 전부터 관심이 있었었던 민지형의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와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두 권을 들고 가 사장님께 조언을 구했더니 ‘미친 페미니스트 여친’은 이슈로 몰아치는 느낌이 좋고 ‘딸에 대하여’는 완성도가 조금 더 낫다고 하셨다. 나는 [딸에 대하여]를 선택했다. 우리 부부와 김성준 선배는 두 시부터 계속 술을 마셔서 이젠 다들 횡설수설 수준이 되었다. 아내가 타다를 불렀길래 얼른 일행들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의 스마트폰 영수증에 찍힌 귀가시간은 밤 10시 4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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