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집이 살아난다

도시형 한옥 집수리 14일째

by 편성준

순자는 매일 새벽이면 사료를 달라고 행패를 부린다. 그냥 울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아내와 나 사이 머리맡에 와서는 엉덩이로 우리 얼굴이나 머리를 마구 비비며 다니기도 하고 가슴 위로 올라오기도 한다. 오늘도 새벽에 와서 하도 울길래 내가 눈도 못 뜨고 사료를 꺼내 준 뒤에 버릇처럼 라디오를 틀었는데 음악방송이 나오길래 이상하다 했더니 아내가 "여보, 지금은 일곱 시 반이 아니고 여섯 시 반이야."라고 하는 것이었다. 날이 흐려서 그랬는지 순자한테 속아 또 새벽밥을 차려주고 말았다.

라디오로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김현정의 뉴스쇼를 번갈아 듣다가 아내가 졸린 얼굴을 하길래 라디오를 끄고 파란대문집으로 건너가 책을 읽었다. 요즘 뒤늦게 [유령여단]에 이어 역주행하며 읽고 있는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을 읽다가 리디북스에 들어가 한국 SF 작가 심너울의 단편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를 구입해 읽었다. 게임회사에 들어간 주인공이 행방불명된 선임이 만들어 놓은 게임에서 황당한 버그를 발견하며 벌어지는(플레이어가 캐릭터를 65,536번 점프시키면 자동으로 서버가 터져버리는) 이야기인데 작은 에피소드에서 창조주와 우주의 작동 원리까지 유추해 보는 농담 같은 상상력이 즐거웠고 곳곳에서 발견되는 유머러스한 문장들도 좋았다.

열 시쯤인가 책을 다 읽기 전인데 아내가 문을 두드렸다. 현장에 내려가 보자는 것이었다. 그냥 내려가려다가 바지를 갈아입겠다고 했더니 아내도 찬성을 해서 다시 집으로 가 청바지로 갈아입고 내려왔다. 아내가 "당신이 집에서 입는 그 바지는 지퍼 바로 옆에 묻은 하얀 얼룩이 지지도 않고 계속 남아 있어서 밖에서 입기는 좀 민망하다."라고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라고 내가 대답했다. 나도 그게 신경 쓰여서 갈아입고 나온 것이었다. 남에게 잘 보이지 않지만 막상 보이면 민망한 게 바지 지퍼 옆의 하얀 얼룩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얼룩 하나 없는 깨끗한 인생을 살기엔 이런저런 허점이 너무나 많고... 순백색은 아니더라도 지저분하게 살지는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가져볼 뿐이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또 뭔가가 달라져 있다. 오늘을 내가 쓸 작업실의 창문이 생겼다. 하루에 하나씩 이런 변화가 생기는 게 신기했다. 날마다 집이 살아난다. 아내가 창문이 좀 작은 것 아니냐고 걱정을 했더니 임정희 목수님은 "크게도 해보고 높게도 해보고... 결국 세 번이나 고쳤어요."라고 말했다. 나중에 완성될 작업실 바닥의 높이까지 최선을 다해 정교하게 계산해서 맞춘 창 높이라는 것이었다. 임 목수님의 설명에 우리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인 레이아웃이나 컨셉은 같이 정하더라도 늘 디테일에서는 혼자 고민해야 하는 목수님들의 노고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루 공사하는 벽에 웬 레이저 선이 보이길래 "이건 뭐예요?"라고 물어보니 김정국 목수님이 "그냥 켜놓은 거예요."라고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아, 수평 맞추는 거구나." 하고 우리는 금세 알아차렸다. 목수님들이 작업하는 걸 보면 대충 하는 것 같아도 늘 이렇게 엄정한 측정이 뒷받침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내가 주방 기기 위치 등을 임 목수님과 상의하고 있는데 미장공인 김필식 사장님이 오셨다. 오늘 미장 현장을 확인하고 대충의 작업 견적을 내기 위해 온 것이었다. 아내가 "어머, 더 젊어지신 것 같아요."라고 인사를 했더니 "에이, 더 늙었죠, 무슨."이라 말하며 웃으셨다. 이번 공사는 안팎으로 미장공이 해야 할 일들이 전보다 훨씬 많다고 했다. 임 목수님이 꼼꼼하게 직업 한 곳들을 체크해 주어서인지 김 사장님은 금방 자리를 떴다. 임 목수님이 '월요일에 뵙자'고 인사를 하고 다시 아내와 주방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내는 자신이 노트에 스케치해 본 주방 가구들을 보여주며 주방 동선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임 목수님은 아직 수도 파이프 배선이 다 확정된 게 아니니 필요에 따라 위치 변경을 할 수 있다며 아내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주었다. 전기 콘센트는 독일제 융 제품을 쓰기로 했다. 임 목수님 말에 의하면 이 제품은 값도 비싸고 시공도 까다로운 데다가 결정적으로 콘센트가 쭉 이어지지 않고 꼽는 곳이 하나씩만 있어서 '전기 사장님이 엄청 싫어하는' 제품인데 그래도 꼭 이걸로 하고 싶다고 하길래 우리도 좋다고 했다. 나중까지 생각하면 목수님의 말을 들어서 손해 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치열 목수님이 게스트룸 화장실 쪽 서까래 교체 작업을 하는 곳에서는 작업을 할 때마다 우박처럼 흙비가 쏟아져 내렸다. 물론 그래도 개의치 않고 계속 작업을 한다. 낡은 서까래를 빼내고 그 자리에 새 목재를 끼워 넣는 장면은 신기했다. 임정희 목수님은 김치열 목수님과 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얘기를 들려주었다. 같은 팀이었는데 그때도 임 목수님은 팀장을 맡았고 팀원이었던 김 목수님은 '천재 목수' 소리를 들으며 지냈다는 것이었다. 임 목수님은 마음이 급하다고 했다. 다른 현장보다 짧은 공사 기간 때문에 그럴 것이다. 솔직히 우리 집 정도의 일이면 기간을 몇 개월씩 잡아서 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미리 협의를 했고 또 이미 입주일이 정해져 있으니 하루하루가 목수님이 계획한 대로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까래를 교체하는 걸 지켜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 듯 현장에서 물러났다.

오랜만에 길상사까지 걸어갔다 오자고 했더니 아내가 좋다고 해서 한참을 걸었는데 갑자기 아내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멈춰 섰다. "여보, 나 배고파. 그냥 올라가다간 화낼 것 같아."라고 말했다. 아내는 배가 고프면 정말 화를 낸다. 우리는 급히 진로를 수정해 건너편 언덕 위에 있는 용돈까스집에 가서 옛날 돈까스를 하나씩 먹었다. 아침을 안 먹어 둘 다 배가 고팠는데도 음식의 양이 많아서 둘 다 조금씩 남기고 일어서야 했다. 길상사 입구엔 마스크를 써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원래도 조용한 곳인데 사람들이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그런지 더 조용했다. 우리는 길상사에서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나와 걸으면서 한옥 공사와 마당에 심을 나무 등에 관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아내는 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컨디션이 나빠서 그런 건지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고 말했다. 나는 당신이 요즘 신경 쓰는 게 많아서 그런 거라고 대답했다. "난 왜 이렇게 게으르지?"라고 한숨을 쉬길래 '당신은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난 어쩌다 이렇게 돼지가 됐지?"라고 하길래 '당신은 날씬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아내가 얼른 다시 명랑쾌할해져야 할 텐데 ,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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