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형 한옥 집수리 18일째
아내는 오후 두 시반 정도가 간식 시간으로 딱 적당할 것 같다고 했다. 서촌에서 만나 점심을 먹은 우리는 버스를 타고 현장으로 가면서 동네 맥도널드에 들렀다. 떡이나 빵을 사 갈까 하다가 오늘은 햄버거를 사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치킨 버거와 소고기 버거를 섞어서 일곱 개를 사고 슈퍼에서 사이다도 큰 걸로 한 병 샀다. 오늘은 미장하는 분들까지 총 일곱 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이필식 사장님을 비롯한 미장공들이 작업대 위에 올라가 천장 미장 작업을 하고 계셨다. 미장을 하기 전에 '인슐레이션'이라 불리는 유리섬유를 먼저 채워 넣고 그 위에 황토와 접착제를 섞은 걸 흙손으로 쓱쓱 처바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미장을 하고 나면 비로소 바람이 새지 않는 한옥이 완성되는 것이다. 임정희 목수님은 아직도 스티로폼으로 단열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요즘은 단열 효과가 좋아 웬만하면 이 방식을 쓴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간식이나 좀 드시고 하라고 했더니 임 목수님이 "다들 간식 드시고 합시다!"라고 외쳤고 몇 초 후 시끄럽게 돌아가던 전기톱과 황토 섞는 그라인더 등이 일시에 멈췄다. 김치열 목수님이 햄버거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다들 혀를 끌끌 찼지만 얼른 주워서 다행히 반은 건졌다며 웃었다. 임 목수님이 권상우 나오는 영화에서 권상우 별명이 햄버거였다는 얘기를 하길래 <히트맨> 얘기냐고 했더니 <말죽거리 잔혹사>라고 말했다(하여간 옛날 사람이다. 근데 좀 이상해서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권상우 별명이 아니라 권상우 친구 별명이 햄버거였다).
미장이 시작되니 벽체도 만들어지고 집이 점점 확고하게 틀을 잡아간다. 임 목수님이 마당에 있는 게스트 화장실 천장을 보여주었다. 히노키(삼나무)로 마감을 해서 향기가 좋을 거라고 했다. 한옥 지붕을 모두 살릴 수는 없어서 주방과 마루만 서까래를 노출하기로 했는데 오늘 황토로 미장이 진행되고 있는 주방 천장을 보니 너무나 아름다웠다. 역시 서까래가 보이는 천장은 한옥의 백미다. 미장공들은 양동이와 흙손만 있으면 천하무적이라고 아내가 말하자 이필식 사장님이 그렇지 않다고, 미장공들은 허리 아프고 목 아프고 힘들어 죽는다고 하며 웃었다. 자세히 보니 바깥의 서까래는 흙손이 아니라 작은 붓으로 미장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아내가 앞으로 이렇게 한 달간 미장이 계속되는 거냐고 묻자 임 목수님은 "미장 한 달 하면 내가 망하죠."라고 말하며 웃었다. 다른 작업들이 진행되면서 그때그때마다 진행된다고 했다.
작업장에서 나와 집으로 올라가다가 커피가 마시고 싶어져 동네 커피숍 '일상'으로 갔다. 사장님이 오늘은 코스타리카가 준비되었다고 해서 그걸 주문했다. 아내는 보통 집수리 같은 걸 하는 분들을 보면 되게 힘들어 보이고 심지어 안쓰러워 보이는 경우도 많은데 우리집을 수리해주고 있는 분들은 목수, 설비, 미장까지 워낙 오래되고 팀웍이 좋아서 현장이 늘 밝고 즐거워 보인다고 했다.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하는 사람들을 이길 수 없는 법인데 우리 현장이 그런 쪽에 가까워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내일은 4월 1일이니 우리 그냥 죽자!"라고 뜬금없이 말하길래 왜 하필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죽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아내가 웃으며 "아, 그날 당신이 50만 원짜리 소주 마신 날이지. 내 위스키도 빼앗아 먹고."라고 말했다. 우리는 9년 전인 2011년 4월 1일에 처음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아내와 함께 앉아 그날을 추억해 보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4월 1일은 장국영이 자살을 했으니 우린 살자고 농담을 하면서 커피숍을 나왔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이왕 이렇게 된 거 함께 살아보자고 한 번 더 아내를 설득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