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형 한옥 집수리 20일째
"법대로 해, 법대로! "
공사 현장 안으로 들어가니 이런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라 쳐다보니 미장 사장님과 전기 사장님이 싸우는 소리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싸우는 게 아니라 티격태격 싸우는 척하며 농담을 주고받는 것이다. 건드리면 흙먼지가 비처럼 쏟아지고 비계 위에서 하루 종일 허리를 엉거주춤 자세에 맞춰 굽혀야 하는 곳이다 보니 이런 식으로 농이라도 주고받으며 시름을 달래는 것이리라. 미장 장인은 세 명이고 전기 사장님은 하나이다 보니 당연히 전기 사장님이 밀리는 형국이다. 전기 사장님이 대문 옆 비계로 올라서니 미장 사장님이 "아이, 이따 하세요. 내려가세요."라고 야단을 쳤다. 미장 사장님들에겐 전기 사장님이 밥이다. 전기 사장님이 서럽다고 구시렁구시렁거리며 내려가자 다들 웃음을 깨문다. 오래도록 손발을 맞춰 온 분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와 유머감각이다.
부부욕실 공간이 다 완성되었다. 임 목수님은 단열재를 넣고 판자를 덧댄 벽을 손보고 다닌다. 이 집은 게스트룸이 독립채로 존재하고 손님들을 위한 화장실도 마당에 따로 마련을 하는 바람에 화장실만 총 세 개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공을 들이는 건 부부욕실이다. 처음엔 무척 좁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그렇지도 않아서 마음이 놓인다. 침실과 욕실만은 다른 공간과 독립된 구조로 만들어 최대한 프라이버시를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침실 천정이 생기니 공간을 훨씬 더 현실적으로 상상하게 된다. 침실과 게스트룸 천정 사이로 나뭇결을 살린 대들보가 백미다. 마루와 주방의 천장은 보고 또 봐도 멋지다. 도시형 한옥을 한옥스럽게 만드는 요소는 기와지붕과 마당, 그리고 서까래가 보이는 천정 등이라 생각하는데 우리 집은 이 세 가지가 완벽하다. 기와지붕은 이전에 살던 할아버지가 와공이셨다고 하니 오죽 잘 관리를 하셨을까. 처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천정을 뜯어보니 비 새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마당은 깊고 네모 반듯하다. 한쪽에 작은 정원을 꾸밀 정도로 넓기도 하다. 지붕 서까래 사이사이엔 이필식 미장 사장님이 작은 흙손과 붓으로 정성스럽게 마무리한 회벽이 보인다. 물론 그 안엔 폼 단열재와 황토로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고 마무리를 한 것이라 단열 걱정도 없다.
파란대문 이정옥 대표가 놀러 왔다. 이정옥 대표는 공사 직전에 와서 평면도를 그려 주기도 했고 예전부터 임 목수님을 비롯한 공사 팀원들과도 워낙 친한 사이라 스스럼이 없다. 미장 사장님들이 오랜만이라고 반갑게 인사를 하자 이 대표도 자주 뵙자고 인사를 한다. 내가 그만 나가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는 공사 현장에서 십 분 이상 머무르지 않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임 목수님도 그걸 알기에 우리가 가면 늘 와서 그날 공사의 포인트를 프레젠테이션해준다. 오늘은 한옥의 단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현장에서 나와 성북동 콩집에 가기로 했는데 나오다 보니 어깨가 허전했다. 내 배낭을 현장에 두고 그냥 나온 것이었다. 내가 배낭 가지러 갔다 올 테니 먼저 가 있으라고 했더니 아내가 가는 길에 따뜻한 베지밀을 좀 사다 드리리라고 해서 편의점에 가 베지밀 일곱 병을 사 가지고 가 일일이 한 병씩 나눠 드렸다. 이제 우리가 돌아간 현장은 네 시 반까지 특별한 대화도 없이 날렵한 공구와 손들 만이 바쁘게 움직일 것이다.
, 성북동 콩집에 갔더니 아내가 커피도 시키지 않고 휴대폰으로 뭔가 메모를 하고 있었다. 커피 두 잔을 시켜 들고 갔더니 아내는 아까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나는 요즘 잠을 설쳐서 그런 것 아니냐고 물었고 아내는 잠이야 늘 설친다고 대답했다. 내가 "잠을 너무 설쳐서 설치류가 되는 바람에 요즘 우리가 순자에게 꼼짝도 못 하는 게 아닐까?"라고 농담을 쳤더니 아내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젠 말도 섞기 싫다고 했다. 괜히 실없는 농담을 했다가 본전도 못 건지고 말았다. 전기 사장님이 미장 사장님들에게 밥이듯 아내에겐 늘 내가 밥이다. 커피를 마시고 해동조경에 들러 아까 물어봤던 미스김 라일락을 이만 오천 원 주고 한 그루 사서 집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