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공사 그리고 삼겹살 회식

도시형한옥 집수리 31일째

by 편성준


임정희 목수님이나 김치열 목수님은 정말 가구를 하룻밤 새 뚝딱, 하고 만들어내는 느낌이다. 어제 현장에 가보니 아내와 임 목수님이 며칠 째 의논을 하던 싱크대가 주방에 떡하니 들어서 있었다. 임 목수님은 "싱크대 밑을 좀 보세요. 빈틈이 하나도 없잖아요. 이렇게 딱 들어맞을 때 얼마나 쾌감을 느끼는지 아세요?"라고 말했다. 자신이 치수를 재서 만들어 온 가구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주방 바닥에 딱 들어맞는 건 바닥 미장이 그만큼 잘 되었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미 공사 전부터 이필식 미장 팀이 대한민국 최고라는 얘기는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옆에서 작업하는 걸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 숙달된 손놀림은 경이 그 자체다. 섬세함과 과감함을 오가는 흙손 솜씨는 오랜 세월 한 길을 걸어온 장인의 꾸준한 노력 때문이리라.



막내 김정국 목수님은 이틀째 안채와 게스트룸의 보일러실마다 단열 공사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혹시 겨울에 얼지 몰라서 보일러 주변을 따뜻하게 보강하는 작업인데 흡사 작은 집을 짓는 정성을 들이고 있다. 아내가 "보일러실에 방이 하나 더 생기는 느낌이야!"라며 좋아했다. 김치열 목수님은 혼자서 계속 나무를 썰고 깎고 하더니 툇마루를 거의 다 만들었다. 회전톱날 앞에서 나무를 깎는 모습을 지켜보아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나무를 톱니처럼 깎아서 90도로 꺾어 딱 맞추면 못을 쓰지 않고도 견고함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마루로 변신한다. 게스트룸 입구에서 시작해 부부침실을 거쳐 마루에 이르는 공간까지 저 툇마루가 놓일 것이다. 비가 오는 날 저기 앉아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면 벌써 가슴이 뛴다.



작업일은 아직도 많이 남았지만 미장 공사가 거의 끝나가기 때문에 점심때 간단한 회식을 하기로 했다. 목수님들이 늘 점심을 먹는 '성북로 10길'에 전날 미리 가서 고기 불판을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소고기를 팔지 않는 집이라 돼지고기를 먹기로 했는데 전날 저녁에 목살이 다 나가서 삼겹살밖에 없다고 했다. 목수님들에게 물어보니 삼겹살만 먹어도 좋다고 하셨다. 하긴 이 집은 삼겹살 품질이 워낙 좋아서 별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임 목수님이 술을 안 마시기에 간단하게 맥주 두 병만 시켜서 나와 김치열 목수, 김정국 목수만 건배를 했다. 우리 테이블에서는 내가 고기를 굽기 시작했는데 뭐든 손으로 하는 건 서툰 내가 고기 굽는 걸 못마땅한 눈초리로 처다보던 김치열 목수님이 결국 집게와 가위를 빼앗아 갔다. 고기를 노릇노릇하게 구워 불판 한쪽에 일렬로 착착 배열하는 솜씨가 나와는 전혀 달랐다.

고기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전날 밤 선거 결과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임정희 목수님은 새벽 5시 20분에 일어나 투표장에 갔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입장 불가라는 안내문을 읽고 다시 집까지 다녀오느라 결국 길게 줄을 서야 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미장팀은 수요일 아침에 투표를 하고 나오겠다고 했다는데 임 목수님이 그러면 작업 시간을 너무 까먹으니 아예 하루를 쉬는 게 어떠냐고 해서 전원이 하루를 쉬었다. 그렇다고 작업에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니고 단지 미장 일정만 하루 뒤로 가도록 조정을 한 것이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여당이 압승을 거둔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높은 연령대임에도 불구하고 "황교안은 이제 안 돼요." "홍준표 꼴 보기 싫어." 등등 젊은이들 못지않은 관심과 열의를 볼 수 있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과연 공사를 하루 쉬고 투표를 한 사람들다웠다. 아내와 내가 이상적인 커플의 조건으로 '정치적 성향이 맞아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하는데 그건 일하는 사람들끼리도 마찬가지라는 걸 깨달았다. 대장인 임 목수님부터 새벽에 일어나 투표를 하고 오는 사람이니 다른 팀원들도 비슷한 성향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난 미통당이 전략을 완전 잘못 쓴 것 같아요."라고 김정국 목수님이 얘기하자 "야, 전략을 잘못 쓴 게 아니고... 그냥 고기나 먹어."라고 임 목수님이 면박을 주었다. 임 목수님이 늘 김정국 목수님을 구박하는 것 같지만 그건 사실 팀 막내를 대하는 애정 어린 장난이라는 걸 다 알기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고기를 배부르게 먹었다. 미장팀은 다 드신 순서대로 먼저 일어나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나가셨다. 김치열 목수님과 김정국 목수님도 일어섰다. 바로 현장으로 가는 것이다


오후에 다시 현장으로 가보니 이필식 장인이 기와 끝을 수막새 대신 하얀 시멘트로 마감을 하고 있길래 저건 뭐로 만드는 거냐고 물었더니 '줄눈, 백세멘, 흑세멘을 섞어 만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제보다 한층 높아진 비계 위에 올라가서 기와 끝을 마감하는 이필식 사장을 바라보면서 아내가 "나는 저런 데 올라가서 절대 일 못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문 밖으로 나오니 하얀 부대에 담겨 있는 쓰레기들이 또 한가득이다. 공사를 하는 내내 폐기물 쓰레기는 계속 나오는데 가끔 우리 집에서 나온 게 아닌 게 섞여있을 때가 있다고 한다. 다른 집에서 야금야금 쓰레기를 가져다 놓는 것이다. "그러면 그냥 놔뒀다가 같이 치워요. 어차피 한 트럭에 실어 보내면 되니까. 대신 그거 버린 사람들이 민원을 넣거나 신고를 하진 않을 거 아녜요." 임 목수님이 이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공사를 하다 보면 시끄럽거니 먼지가 많이 난다고 구청에 항의나 신고를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공사 총책임자는 늘 그런 것까지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게 남다른 것이다. 우리는 "저희 가볼게요. 수고하세요."라고 하고는 얼른 현장을 빠져나왔다.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려도 나라를 뒤흔드는 선거가 있어도 공사는 계속된다. 저녁에 아내가 귀가 아프다고 해서 동네에 있는 연세이비인후과에 갔다. 늘 감기나 호흡기 환자들로 득실거리던 병원이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코로나 19 때문에 병 옮을까봐 사람들이 외출을 삼가하는 모양이라 생각했다. 의사선생을 만나고 나온 아내가 "사람들이 요즘 손을 질 씻어서 감기환자가 확 줄어 사람들이 적은 거래."라고 말했다. "그럼 병원 영업에 타격이 있겠네요?" 라고 물었더니 원장님은 "그렇긴 한데...덕분에 저도 좀 한가하게 쉬는 거죠."라고 대답하더란다. 코로나 19가 우리 삶을 바꿔놓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도 우리 미래를 좋은 쪽으로 바꿔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무튼 연세이비인후과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건 처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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