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형한옥 수리 32일째
일기예보에서 얘기한 대로 비가 내렸고 한옥 마당은 촉촉하게 젖었지만 공사는 계속되었다. 금요일은 임정희 목수님과 함께 욕실과 화장실에 붙일 타일을 고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임 목수님 차가 고장 나서 정비소에 맡기고 임시로 받은 승합차를 타고 수원으로 갔다. 오래전부터 거래하던 타일 가게가 수원에 있기 때문이었다. 가는 도중에 차 안에서 공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기초공사가 모두 끝났고 미장도 일단락을 지었다. 이제 붙박이 가구와 싱크대를 만들고 있으며 토요일엔 기와지붕을 따라 이어지는 물받이 공사, 그리고 주말 페인트 공사가 이어진다. 임 목수님은 모든 게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게 오히려 불안할 지경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되도록이면 좋은 자재를 쓰고 가능하면 최고의 인력을 초빙해서 공사를 부탁한다. 우리 부부는 이번 프로젝트에 임 목수님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에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물론 "노고에 감사합니다" 같은 점잖은 표현은 하지 않고 "한옥은 가뜩이나 인건비가 센 데다 자재도 최고급만 쓰고... 이러다가 임 목수님 남는 거나 있겠어? 망하지 않도록 조심해요" 같은 식이다 - 집을 짓거나 고치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잘 지어진 건물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전해주는 것은 물론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을 바꿔주기도 한다. 더구나 이번에 우리가 고치고 있는 집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니까 우리가 이 집에 어떤 생각을 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얼마든지 더 각별해질 수 있다.
임 목수님의 이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얼마 전엔 화제가 되었던 한옥 얘기를 매체에서 접한 부인이 '당신이 이 일도 했었구나. 남편이 한 일을 인터넷에서 보고야 비로소 알았네'라며 투덜대더라는 것이었다. '퍼스널 브랜딩'이 안 돼 있어서 그렇다. 실제로 임 목수님이 작업한 집들 중 매체에 소개되거나 건축 과정이 책으로 나온 경우가 꽤 있지만 임 목수님의 이름이 없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방송의 경우는 건물주에 집중하느라 목수 얘기까지 담아내지 못하는 게 어느 정도 이해되지만 책에서도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 것은 조금 서글픈 일이었다. 우리는 이번 공사가 끝나고 하루 오픈 하우스를 하기로 했는데 그때 임 목수님의 포트폴리오를 간단하게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전달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즉석에서 냈다. 영업 차원이 아니라 임정희라는 개인의 브랜딩을 위해서 한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임 목수님이 어떻게 목수가 되었는지에 대한 들려준 이야기들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고향에 있는 직장에 다니다가 퇴직하고 처음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IMF가 터져 황당했던 이야기, 아르바이트 삼아 일했던 고된 건설현장에서 하루도 안 쉬고 50일을 꽉 채운 성실함에 감복해 전격 스카웃 제의를 했던 사장님 이야기,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의 길을 걸으려 했던 결심과 이후 한옥학교 다닐 때 이야기 등이 너무나 흥미진진했다. 한옥학교 이야기는 지금 함께 팀을 이루어 일하고 있는 김치열 목수님과 김정국 목수님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다들 캐릭터가 너무 독특하고 생생해서 이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계속 일을 한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졌다.
타일 샵에 가서 욕실에 들어갈 타일과 변기, 욕조 등을 결정했다. 타일은 무게도 많이 나가고 일도 까다로워서 건축현장에서 인건비가 제일 세다고 한다. 그런데 손만 빠르고 솜씨가 별로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력은 좋지만 시간을 너무 잡아먹는 사람도 있어서 마음에 꼭 드는 타일공을 만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고 했다. 임 목수님은 '곽 사장님'이 가장 잘하는 분이라 그 분과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서둘러 타일을 고르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지만 타일공사는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한 번은 같이 일하기로 한 타일공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계속 계약을 깨려고 하길래 왜 그런가 물어봤더니 "제가 경력은 꽤 되는데 모자이크 타일 작업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라고 실토를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타일을 고르고 임 목수님과 헤어져 수원에서 유명하다는 '코끼리만두'에 가서 고기만두와 쫄면, 우동 등을 먹고 수원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너무나 피곤했다. 요즘 아내와 나 둘 다 그렇다. 일단 잠을 잘 자야 하는데 이런저런 근심에 잠을 설치고 한밤중에 일어나 술을 마시기도 한다. 임 목수님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이 많다고 한다. 힘든 시기이지만 잘 넘겨야 한다. 힘들 때마다 '우리가 왜 집을 짓고 고치는가'를 생각한다. 앞으로 펼쳐질 나날들이 불안하긴 하지만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믿고 싶어서다. 목수님은 낡은 벽과 서까래들을 손보며 실제로 집을 고치고 아내와 나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한옥을 바라보며 '생각의 집'을 짓는다. 우리는 동업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