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형 한옥 수리 48일째
아침에 일어나 모바일 통장을 들여다보며 돈 계산을 하다가 하마터면 아내와 싸울 뻔했다. 아내는 집과 관련된 돈이 오간 흔적만 체크해보라고 했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 숫자를 보기만 하면 얼어붙는 평소 습성에다 집 거래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큰 숫자라 주눅이 들어 더 정신이 없는 것이다. 아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잖아,라고 나를 다그쳤고 나는 아, 다그치지 좀 말아줄래?"라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 아내가 와서 숫자를 척척 써서 계산을 했다. 내가 회사 다니면서 받았던 직장인 마이너스 대출금을 하필 이사 전전날인 목요일에 갚아야 하는 게 문제였다. 돈이 모자랐고 당장 생활비도 막막하다. 한숨이 나왔다. 계산을 겨우 끝내고 아내에게 돌아간 나는 소리를 지르고 반항을 했다는 이유로 야단을 맞았다.
둘 다 입맛이 없어서 구포국수에 가서 멸치국수를 한 그릇씩 먹다 남기고 나와 한옥 수리현장으로 갔다. 한옥 현장에 가서 점점 완성되고 있는 집을 보면 너무나 기쁘고 벅차지만 돈 문제를 생각하면 곧 한숨이 나오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내와 내가 두 달 내내 한옥 대문을 들어설 때마다 느끼는 '희비의 쌍곡선'이다.
은곡도마의 은곡 선생이 직접 만들어 주신 회화나무 아일랜드 식탁 상판과 임정희 목수님이 만든 티크 조명은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임 목수님은 "혹시 저녁에 와서 조명 켜봤어요?"라고 물었다. 우리가 미처 그건 못 해봤다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더니이 목수님이 "나는 그거 보려고 저녁 여덟 시까지 기다렸는데."라고 말했다. 순간, 식탁과 마루의 간접 조명과 마당의 불빛을 저녁에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네 시 반이면 모두 퇴근하는 현장에 혼자 앉아 있는 임 목수님의 모습이 떠올라 약간 숙연해졌다. 임 목수님은 오일을 바른 기둥과 문틀 들을 가리키며 이삼 년 지나면 색깔이 비슷해져 더 멋있을 거라고 말했다.
목수님과 툇마루에 앉아 요즘 목수님이 공사를 해주고 있는 어느 소설가 얘기를 했다. 그 소설가의 집은 우리집보다 훨씬 규모가 작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녀의 글을 정말 좋아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작가와 교류를 하고 있는 임 목수님까지 덩달아 멋져 보였다. 돈 얘기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올 때도 엄청 무리를 해서 왔고 이번에도 약간의 여유 자금이 생겼는데 그걸 계기로 정신없이 집 계약을 하다 보니 또 돈이 모자란다고 했더니 목수님은 그래도 그게 잘한 일이라고 했다. 자신이 가장 후회하는 게 빚을 깨끗이 다 갚고 지금의 아파트로 들어간 것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엔 '아, 빚이 없어서 참 좋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결국은 빚을 져서라도 뭔가를 도모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을 계속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겠죠? 우리처럼 돈 못 모으는 재주가 없는 인간들은 빚을 지고 그걸 갚아 나가는 게 제일 나은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제법 어른스러운 말이었으나 대답을 하면서도 속은 쓰리고 겁이 났다.
임 목수님이 샤워기와 밸브를 꺼내 주며 "이건 할 수 있죠?"라고 물었다. 우리집 샤워기가 고장 나서 교체를 해야 한다고 했더니 잊지 않고 챙겨 온 것이었다. 아내도 "저 정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길래 나는 덜컥 겁이 나서 "우리집에 몽키스패너 있나?" 물었다. 아내가 "몽키는 없고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라고 농담을 하자 임 목수님이 한숨을 내쉬며 몽키스패너를 가방에서 꺼내 주었다.
오후 세 시에 장준우 요리사가 한옥을 구경하러 오기로 했었는데 정말 딱 세 시가 되니 부부가 함께 대문을 들어섰다. 장준우 요리사는 전철역 바로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도 자주 마주치는 사이인 데다 지금 성북동에 있는 작은 한옥에서 스튜디오를 하고 있고 분이라 진작부터 우리 한옥을 구경하고 싶어 했다. 우리 부부도 그 집에 가서 음식을 먹고 사람들과 어울린 적이 있으므로 부인 심희정 씨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장준우 요리사는 집이 번듯하고 고급스럽다고 칭찬을 했다. 우리가 알고 보면 좁다고 했더니 무슨 소리냐고, 이 정도면 엄청 넓은 거라고 반박했다.
마침 욕실 시공을 하는 분이 샤워실 칸막이 유리를 들고 오셔서 공사를 했다. 세면대와 샤워기 사이를 유리 칸막이로 분리하니 욕실이 더 짜임새 있어 보였다. 아내는 내가 샤워를 너무 요란하게 하는 스타일이라며 앞으로 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해 사용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인부께서 세면대와 유리 칸막이 사이를 실리콘으로 막으면 좀 낫다고 하면서 붙일까요?라고 묻길래 그러지 말자고 했다. 이유는 '안 이뻐서'다. 실리콘을 안 붙이는 대신 내가 좀 더 조심해서 샤워를 하기로 했다.
장준우 요리사 부부가 돌아가고 조금 있다가 페이퍼 정유희 편집장과 박창현 건축가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정유희 편집장이 한옥 현장도 궁금하고 또 임정희 목수님에게 뭔가 조언을 구하고 싶은 것도 있어서 온다고 했던 것이다. 지금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고 있는 박창현 건축가가 직접 임 목수님에게 질문을 했고 임 목수님은 최선을 다해서 대답을 해주었다. 정 편집장은 우리집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했고 집의 기운이 좋아서 좋은 일이 반드시 생길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박창현 건축가와는 25년 전부터 친구로 지냈는데 지금은 무슨무슨 건축상도 많이 타고 아주 건축계의 거물이 되었다고 하며 웃었다.
자리를 옮겨 커피숍 '일상'으로 가서 커피를 마시며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얘기를 듣다가 아내가 이 분들과 장준우 요리사를 연결해주면 딱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당장 장준우 요리사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 안 가고 성북동의 스타벅스에 있다고 하길래 당장 일상으로 오라고 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처음 본 사람들이지만 정유희 편집장과 장준우 요리사는 서로를 알고 있는 사이였고 정 편집장과 심희정 씨 사이엔 서로 알고 있는 막역한 친구들이 있었다. 웃음과 놀라운 탄성이 넘쳤고 문화계 인사들의 이름이 넘실거렸다. 잠깐 한옥을 보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즐거웠다.
한옥을 수리하면서 그 과정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기로 결심을 하고 아내와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글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었는데 그들 중 "나도 한옥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게 놀라웠다. 처음엔 정말일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나중엔 정말일 거야, 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 부부가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로망을 끄집어내 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 중 한 사람인 데미언 허스트는 “예술이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방법은 아주 많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아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나는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중간에 한옥이라는 오브젝트가 들어선 것이다. 그래서 매일 걱정을 태산 같이 하면서도 한옥 현장에만 가면 또 속없이 좋아 죽는 것이다. 오늘도 새벽 네 시에 깬 우리 부부는 아무 걱정이 없는 순자를 부러워하다가 아내는 겨우 다시 잠이 들었고 나는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방금 아내가 깨서 남편이 잠도 못 자게 한다고, 자판 좀 살살 두드리라고 야단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