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괴로워, 말을 하는 고양이라니

성북동 소행성의 말하는 고양이 순자

by 편성준

순자가 처음부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분홍색 케이지에 담겨 우리 집으로 왔을 때만 해도 순자는 그냥 작고 평범한 암코양이었다. 고양이든 개든 반려동물이라고는 처음 키워보는 우리 부부는 틈만 나면 순자에게 다가가서 사료와 물, 간식(추르추르를 제일 좋아했다)등을 주며 말을 시켜 보았지만 그렇다고 순자가 대답을 할 리는 없었고 우리도 대답을 원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순자가 나한테 가끔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었다. 그것도 반말을 하는 것 같았다. 아니, 순자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반드시 반말을 할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순자가 정말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 사실은 지난달엔 배가 너무 고팠어."


내 귀를 의심했다. 순자가 말을 하다니. 새벽이었고 마루엔 나와 순자밖에 없었다. 내가 놀라서 순자를 쳐다보니 순자는 진정하라는 표정으로 앞발을 천천히 들어 이마를 문지르며 나를 보고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도 괴로워. 말을 하는 고양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말을 하게 된 거야? 그리고 넌 왜 나한테 반말을 하는 건데?"

"이제 새벽이면 가끔 너한테만 말을 할 거야. 오래 할 순 없으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

어이가 없었다. 소설책이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을 하는 고양이라니. 순자는 빠른 말투로 지난달까지 아내가 사료를 너무 적게 주는 바람에 허기가 져서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런. 미안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처음엔 사료를 듬뿍 주던 아내가 어느 날인가부터 사료의 양을 전격적으로 줄였던 것이다. 스코티시인 순자가 그리 작은 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덩치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 같아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동안 자신이 너무 많은 양의 사료를 주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아내는 미안한 마음을 듬뿍 표현하는 의미로 사료량을 엄청 줄였다. 졸지에 극소량의 사료를 배급받게 된 순자는 극심한 공복감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하는 분노와 굶주림에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계속 눈을 뜨고 있다 보니 어느 날 TV 뉴스가 눈과 귀에 들어오더라는 것이었다. 날이 갈수록 의식은 명료해지고 마침내 인간의 언어 체계를 며칠 만에 이해하고 구사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마블 코믹스의 대표적인 슈퍼히어로 '헐크'처럼 거대한 분노가 유발한 신비한 초능력이었다. 물론 헐크는 화가 나면 바지가 찢어지지만 순자는 두뇌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게 다른 점이긴 했다. 보통의 고양이들도 순간의 분노 게이지는 높아서 발톱을 높이 들긴 하지만 순자의 분노는 복리 형태로 계속 늘어나는 아주 특이한 체질이었던 모양이다.


"알고 보니 나는 머리가 좋은 돌연변이 고양이더군."

원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날부터 순자는 책을 읽고 TV를 보는 고양이가 되었다. 줄어든 잠만큼 두뇌는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자 한집에 사는 나와 아내의 모습이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가 없더라는 것이었다. 순자는 특히 자신의 이름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고 털어놓았다. 아내가 순하고 착하게 살라고 순한 순(順) 자에 아들 자(子) 자를 썼는데 순하게만 사는 건 요즘 세태에 영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이름 끝에 자 자를 붙인 것은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나간 일본식 표현이라는 것이었다.

"야, 여기서 항일이 왜 나와? 나 참."

"일본 사람들이 너희들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다 봤거든."

"어디서 그런 걸 봐?"

"너희들이 책꽂이에 꽂아놓은 책에서도 읽었고 TV로도 봤지. 나 '역사적 그날'하고 '차이나는 클라스' 좋아하잖아."


순자는 말을 하는 고양이로 사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멋모를 땐 하루 스물두 시간 동안 자거나 먹기만 해도 아무 걱정이 없었는데 그 '굶주림 분노 사건' 이후로는 꼭 고양이 가죽 안에 갇힌 인간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자 괜히 순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료량을 줄였던 아내를 탓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정말 고양이 순자를 위하는 마음으로 한 행위였는데 그게 이런 어이없는(또는 슬픈) 결과를 낳게 될 줄을 누가 알았단 말인가. 그보다도 순자가 '토킹캣' 즉, 말을 하는 고양이라는 걸 아내가 믿을 리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순자는 새벽에 나하고만 얘기하기로 했다니까. 순자가 말했다.

"내가 한 말 혜자에게 하더라도 안 믿을 거야. 인간은 그렇게 상상력이 풍부한 종은 아니니까."

나도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남편이 일 년을 놀더니 드디어 미쳤구나 라는 소리를 듣기는 싫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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