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의료비 지출 1위 등극하다

성북동 소행성의 말하는 고양이 순자

by 편성준


"순자 데리고 병원에 한 번 가야 하는데..."


아내는 한옥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틈만 나면 이렇게 중얼거리며 나를 쳐다보곤 했다.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사가 결정되고 두 달간 한옥 수리 현장에 매일 출퇴근을 할 정도로 열중하다 보니 동물병원에 갈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한옥으로 이사 온 지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여유가 생겨 순자를 케이지에 넣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제 순자의 덩치가 너무 커져 케이지는 훨씬 작아 보였다. 그런데 예전부터 케이지에 들어가는 걸 싫어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너무 심하게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다. 케이지를 들고 빠른 발걸음으로 병원을 향하던 나는 안에서 마구 소리를 지르는 순자가 심상치 않아 딸기부동산 앞쯤에서 걸음을 멈추고 여보, "순자가 왜 이러지?"라고 물었더니 아내가 "사실은 조금 아까 순자를 넣어둔 케이지가 툇마루에서 마당으로 떨어졌었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케이지의 지퍼를 조금 열고 순자를 쳐다보니 순자는 나지막이 으르렁거리며 화를 내고 있었다. 느닷없이 케이지에 갇힌 것도 황당한데 마당으로 떨어지기까지 했으니 화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아내 몰래 순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동네에 있는 동물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의뢰했다. 순자는 일단 주사를 맞느라 고생을 했고 '다른 건 다 괜찮은데 한 가지 수치가 높은 게 나와서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원장님의 의견에 따라 초음파 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며칠 전 다른 고양이가 비슷한 증세가 있어 초음파 검사를 해보니 이미 암이 온몸으로 퍼져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아내와 나는 어서 초음파 검사를 해보자고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순자는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고 건강상태가 양호하는 판정을 받았다. 병원비가 무려 28만 원이 나왔다. 순자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니 이렇게 많이 나오는 것이다. 순자가 우리 집 식구들 중 의료비 지출 1위를 찍는 순간이었다. 문득 여행 갈 때마다 남들 몰래 개를 호텔에 맡긴다는 Y감독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개가 혼자 있으면 너무 힘들어해서 호텔에 맡기는 것뿐인데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 대부분이 "너 돈 많구나."라는 반응을 보여 어느 순간부터 호텔 투숙을 비밀에 부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요즘 버는 것도 없는 것들이 고양이 병원비로 돈을 펑펑 쓰는구나 하는 소리를 들을까 봐 두려워졌다. 돈 걱정을 하며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 마루로 나가보니 순자는 이미 일어나 방충망 문 앉아 있었다.


"어제 병원비 많아 나왔지?"

"괜찮아. 아픈 데 없으니 그걸로 됐지."

"툇마루에서 떨어진 것 때문에 화를 냈던 건 미안해. 너무 놀랐거든."


순자가 비록 나에겐 꼬박꼬박 반말을 할지언정 기본적으로 예의는 차릴 줄 아는 고양이었다. 고양이가 만 3살이면 어른으로는 40대에 해당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중년의 순자'라는 생각을 하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순자는 뉴스나 영화도 보고 책도 읽는 지능 높은 고양이로 살면서도 유리조각에 비친 햇빛을 보면 본능적으로 벽을 향해 앞발을 뻗치는 자신을 보는 게 너무 괴롭다고 했다. 인간의 지성과 고양이의 본능을 함께 지닌 자의 삶이란 괴로운 것이었다.


"미국에선 코로나 19 때문에 실업자가 3천300만 명이나 발생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수백만 명이 의료보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네."


순자가 노트북 안의 뉴스를 클릭하면서 내게 말했다. 문재인케어는 공공의료 범위 확대, 의료의 사회보험적 성격 강화라는 점에서 오바마케어와 방향성이 같은데 국민건강보험의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바꾸는 게 목표란다. 즉 오바마케어가 의료보험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정책이라면, 문재인케어는 이미 가입한 이들이 받을 수 있는 ‘보장 항목’을 늘리는 게 핵심이라는 것이다. 내가 살면서 고양이에게 오바마케어와 문재인케어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순자야, 너는 아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구나. 나의 비아냥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순자는 어느새 마당의 햇빛을 좇아 머리를 향하고 누워 눈을 감았다. 아침에 몇 마디 하고 나면 하루 종일 조용해지는 순자가 나는 썩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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