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우나 즐거우나

공처가의 캘리

by 편성준

괴로우나

즐거우나

아내 사랑하세




어제 오랜만에 성북동 친구들이 모였다. 성북동 이사 초기엔 툭하면 모여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들이었지만 우리가 아래 한옥으로 옮겨 와서는 처음 모이는 자리였다. 아내는 삼겹살로 수육을 삶았고 카톡방에서 친구들이 먹고 싶다고 했던 오이소배기와 오이지무침 등 음식을 준비해 놓았다. 어제는 포트럭파티라서 각자 음식을 가져오기로 했다.


저녁 6시에 옆집 총각이었던 동현이 와인을 들고 먼저 도착했고 제의 진경 부부와 혜나도 오징어회 등 음식을 잔뜩 싸왔다. 울릉도에 간 호산만 오지 못한 조촐한 동네잔치였다. 모두들 코로나 19 때문에 하던 일도 멈춘 상태라 걱정들이 많았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이러다가 정말 직업을 바꿔야 할까 봐요"라는 소리가 전혀 투정으로 들리지 않았다. 이 와중에 한옥을 수리하느라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겠느냐는 위로들도 많았다. 생각해 보면 참 철없고 어이없는 짓이다. 아내와 나는 요즘 버는 것도 없으면서 손님맞이 하느라 야금야금 돈을 써서 곧 망할 태세라며 웃었다. 그래서 오늘 포트럭을 해준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밤늦게까지 음식을 먹으며 웃고 떠들다가 다들 배가 불러서 돌아갔다.


아침에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낮에 산책 삼아 혜화동 동양서림에 가서 마루야마 겐지의 책을 한 권 사 가지고 나오다가 문득 '나는 괴로우나 즐거우나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마루야마 겐지도 그랬겠지.'라는 생각을 느닷없이 했다. 직업을 바꾸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괴로우나 즐거우나 아내 사랑하세'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애국가에서 따온 구절이지만 나라사랑보다는 아내 사랑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한성대입구역쯤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라사랑이 밥 먹여주나? 아내 사랑이 밥 먹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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