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처가의 캘리
화가 난 아내가
자꾸 집안일을 하길래
나는 스타벅스로 왔다
아침부터 아내가 심란하다. 심란함의 직접적인 발단은 물론 알고 있지만 그건 결국 금세 지나갈 고민이라 굳이 여기에 밝히진 않는 게 낫겠다. 다만 그 심란함 속엔 '성북동 소행성에서의 삶'이라는 큰 명제가 들어 있기에 덩달이 나도 심란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문제는 역시 돈이다. 인간은 한순간도 돈 문제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지금 상황을 살펴보면, 한옥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이사를 오는 과정에서 대출을 받고 돈을 꾸어 당장 급한 불을 끈 셈이지만 더 큰 불안의 불씨는 여전히 발밑에 남아 우리 두 사람의 발바닥을 미지근하게 데우고 있다.
심란함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아내가 덜컹거리고 다니며 마당의 꽃밭을 살피고 물을 주고(이미 아침에 내가 줬는데) 주방의 쓰레기통을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차라리 나한테 짜증을 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도 않으니 더 안쓰럽다. 견디다 못한 내가 얌체처럼 스타벅스에 가서 혼자 놀고 있을 테니 이따 오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더니 날이 찌뿌듯하고 하늘도 컴컴했다. 길 가는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길래 나도 서둘러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썼다.
그동안의 직업을 떠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가 벌던 돈의 삼분의 일도 만들지 못한다고 들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게 바로 돈의 노예다. 돈만 안정적으로 벌 수 있다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만약 돈으로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살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돈의 노예가 되겠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견뎌야 하지 않겠는가. 성공이 별 건가, 슬기롭게 견디는 일에 성공하고 나면 우리는 새로운 삶을 얻게 되리라... 스타벅스 테이블 앞에 앉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동네에 사는 장준우 셰프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스콘이 담긴 접시를 내민다. 내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반가워서 얼른 내 것까지 샀다는 것이었다. 늘 이렇다. 근심이 쌓여 발바닥이 뜨거워질 때쯤엔 꼭 이런 사람들이 나타난다.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이라 믿는다. 나는 원래 행운아인 데다가 근본적으로 낙천주의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