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사랑하고 천천히 죽읍시다

공처가의 캘리

by 편성준

천천히 사랑하고

천천히 죽읍시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책을 읽다가 생각했습니다
화장실에서 일만 보면 안 되는가

나는 왜 화장실에서도
책이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봐야 하는가
마음이 바빠서 그렇습니다
바쁜 게 아주 몸에 배서 그런 겁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천천히 책을 뒤적이면서
음악도 들으면서
아내가 물으면 대답도 하면서
밑줄 긋고 메모도 하며 노는 건데

그게 왜 그렇게 힘이 들까요
지금처럼 시간을 아껴 살면
돈을 더 많이 벌게 될까요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이 올라갈까요

돈을 더 벌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뒤로 밀려나지 않으려고
이런다는 거 잘 압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안 살면
우리는 뒤로 밀려날까요?
비참하게 죽게 될까요?
아닙니다
제가 해봤는데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하!)
절대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평생 하는 일이 뭘까요
사랑하고 죽는 것

가장 확실한 것 하나는
우리 모두 반드시 죽는다는 거죠
그렇다면 죽기 전에 할 일이
사랑밖에 더 있습니까

이렇게 산다고
더 버는 것도 아니고
더 올라가는 것도 아니라면
사랑이나 실컷 하다가 죽읍시다

사람,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요
겁내지 말고 게을러집시다

천천히 사랑하고
천천히 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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