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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23. 2020

소통에 대한 소통이 있어 즐거웠던 자리

정혜승의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 북콘서트

신문기자를 시작으로 인터넷 포털의 임원,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 등을 거치며 미디어와 소통에 대한 남다른 통찰을 보여주고 있는 정혜승 저자의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 북콘서트에 다녀왔다. 책을 어제 인터넷 교보문고로 주문해 오늘 조금 읽다가 미처 다 읽지 못했는데 시간이 돼서 합정에 있는 창비 건물로 그냥 갔다. 정혜승 저자는 '마냐'라는 이름으로 알라딘 서재에 서평을 쓰고 트레바리에서 초기부터 활동하던 독서가로도 유명한데 지금은 책뿐 아니라 드라마, 요리 등 문화 콘텐츠 전반에 관한 글을 브런치에 꾸준히 올리고 있다. 행사장에서 김탁환 작가의 글쓰기 모임에서 함께 강의를 들었던 서지은 선생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란히 앉아 질의응답으로 진행되는 강연을 들었다.


김두식 교수의 명쾌하고 유머러스한 사회로 진행된 행사는 정혜승 저자의 감탄을 자아내는 달변과 똑 부러지는 답변 태도 덕분에 내내 즐거운 시간이었다. 김두식 교수가 첫 질문으로 메디치 포럼 인터뷰집인 [힘의 역전] 얘기부터 꺼내자(정혜승이 프로그래머이자 인터뷰어였다) 정혜승 저자는  “오늘 북콘서트는 '힘의 역전'이 아니라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인데요...”라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그건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가벼운 언쟁이라는 걸 모인 사람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엄청 바쁜 삶을 살면서도 서평을 꾸준히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가볍게 시작된 이야기는 이내 포털의 뉴스 편집권이나 기자들의 역할에 대한 생각으로 확대되었고 청와대 청원을 만들 때의 뒷얘기와 그 이후의 평가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어찌 보면 ‘안 해도 될 일’이었던 청와대 청원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했던 동력에는 여러 가지 덕목들이 있었는데 나는 특히 ‘못 하면 못 한다고 얘기했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어떤 이슈든 투명하게 열어놓고 최선을 다 해보되 최소한 얼버무리지는 않았다는 이 말은 바꿔 들으면 ‘정말 하나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는 소리였으니까.


평소 '책밖에 남은 게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보니 자신은 책 말고는 사는 게 거의 없는데 오디오 구입에 남달리 많은 돈을 쓰는 남편(김두식 : 그럼요, 남편분은 우리나라 오디오 업계의 큰 별이시죠) MBC 박성제 기자에 대한 규탄이 잠깐 있었고 그가 어딘가 오디오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렸다던 장난스런 글(와이프들은 블랙에서 블랙으로, 또는 화이트에서 화이트로 바꾸면 오디오 업그레이드 한 걸 잘 모르더라구요) 내용에 대한 폭로도 있었다.


정혜승 저자는 책에서 기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브렉시트'에서 따온 말로, 기자를 낮추어 말하는 기레기로 일하다가 다른 업계로 가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느냐고 묻는 후배 기자들에게서 충격을 느꼈다고 썼다. 기자라는 직업이 이 사회를 보다 나은 곳으로 바꾸는 데 기여하는 사람이라 여기지 못하는 후배들을 보는 것도 괴로운데, 기자 일에서 불만과 자괴감으로 인해 탈출을 모색하는 한다는 것은 레거시 미디어 업계 자체가 내리막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부분에서 언론과 매체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질의응답 시간에 서지은 선생이 질문을 했을 때도 얘기했지만 정혜승 저자가 언론과 매체에 대한 정의를 내려줄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지금 기자들의 역할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만은 자명하다. 이제 기자들은 속보를 내는 것보다는 맥락을 일목요연하게 짚어서 뉴스 소비자들이 이슈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세월호 참사'나 '조국 대전'에서도 보았듯이 지금의 기자들은 대부분 직접 취재 없이 다른 회사의 단독 기사를 베끼거나 거기에 한 줄을 더해 뭉뚱그려 쓰는 게 보통이었다. 시민들은 물론 기자들까지 신문 기사 대신 페이스북 등 각종 소셜 미디어에 오른 잘 쓴 글들을 돌려보는 지경이 이른 것이다.


질의응답 시간에 청와대 청원 문제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다가 다시 '소통'이라는 문제로 돌아갔다. 정혜승 저자는 책 제목에 소통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소통 전문가'로 포지셔닝되는 건 당찮다고 하면서도 소통의 열쇠는 결국 '문제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라는 자세 아닐까, 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정혜신·이명수 선생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 얘기가 나왔다. 거기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면서 "듣는 거다, 듣고 담아내는 거다"라는 얘기를 했다.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얘기가 오고 갔고 100% 만족할 만한 답은 나오지 않았더라도 '소통에 대한 소통'이 있던 저녁이었다는 점만큼은 누구나 공감했으리라 믿는다. 누군가 마지막쯤에 "어떻게 하면 정혜승 저자처럼 능숙하게 얘기를 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명확한 통계 수치 몇 개를 외우고 있다가 적당히 인용하면 폼이 난다."라고 대답해 웃음 섞인 박수를 받기도 했다.


저자 싸인을 받는 게 쑥스러워 그냥 갈까 하다가 화장실에 다녀와 맨 뒷줄을 섰더니 정혜승 저자가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라며 아내의 안부를 물어 반갑고 고마웠다. 갑자기 집에 손님이 와서 아내는 못 오고 혼자 왔다고 했더니 "요즘 손님들 많이 오셔서 힘들어 어떡해요?"라고 걱정도 해주었다. 안 그래도 이제 힘들어 손님맞이를 좀 줄이려 한다고 대답하고는 전철역으로 뛰어갔다. 저녁을 안 먹었더니 배가 좀 고파서 오징어튀김과 철판만두를 사 가지고 들어와 아내와 함께 캔맥주를 마시며 <개는 훌륭하다>를 보다가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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