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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22. 2020

독하다 토요일 시즌4 여섯 번째 모임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의 단편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은 그야말로 '혜성 같이' 나타난 소설이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재작년 가을에 아내가 보내준 카톡 메시지 링크를 통해 읽었는데 그때 소설이 발표된 창비 사이트가 일시적으로 마비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죠. 후배 감독 하나는 이 소설을 읽었다는 저의 페이스북 포스팅에 "저도 어제 새벽에 읽었습니다. 이 소설 엄청 빠르게 소비되네요."라는 내용의 댓글을 달기도 했습니다. '판교 리얼리즘'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IT업계의 단면을 제대로 포착했다는 평을 받은 이 소설은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호오가 좀 엇갈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좋다는 편이었는데 독토 멤버인 윤혜자 씨나 김은주 씨 같은 경우는 읽는 재미가 없다는 사전 반응이었으니까요. 늘 그렇듯이 모여서 함께 얘기해 보면 작품이나 소설가에 대해 보다 다양한 점을 느끼거나 알게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여섯 번째 모임을 기다렸습니다.


2020년 6월 17일 수요일 오후 6시부터 모임 장소인 '성북동 소행성'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원래는 토요일에 열려야 마땅하지만 5.18에 관한 일인 창작 판소리극 [방탄 철가방] 공연 준비 등으로 계속 참석을 못했던 최용석 씨가 이번에도 사정이 생겨 토요일 참석이 어렵다는 소식을 전해오자 이번만은 토요일 모임 대신 평일을 골라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독하다 토요일은 6개월 단위로 한 시즌이 바뀌는데 이번이 시즌4 마지막 회인만큼 멤버가 다 모였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죠. 결국은 수요일인 17일이 가장 적당한 날이라는 투표 결과에 따라 평일 저녁에 모이게 된 것이었습니다.


표제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은 작가가 '월급을 현금 대신 카드 포인트로 받은 사람이 있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작가가 나머지를 상상해서 써본 이야기라고 합니다. 다른 회사에 다닌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월급을 포인트로 받았지만 그럼에도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작가는 자신의 세대에 대한 어떤 소설적 통찰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윤혜자 씨는 이 표제작보다는 소설집 뒤쪽에 실린 <새벽의 방문자들>과 <탐페레 공항>이 더 마음에 들었다고 했습니다. 바람둥이 남성을 심리적으로 유린하는 여성의 이야기인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는 판타지에 가깝지 않으냐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박재희 씨는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를 읽으면서 이 작가가 사람 관찰을 참 잘하는구나, 하고 감탄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모르는 할머니의 커피잔에 실수로 동전을 넣는 장면의 엉뚱함도 좋았다고 하면서 그런 얘기들을 했더니 서동현 씨는 여성인 작가가 남자들의 심리를 너무 적나라하게 꿰뚫어서 당황을 넘어 살짝 통쾌하기까지 했다고 말했습니다. 여자 문제에 대해서 자신만만하던 지훈이 마지막에 쌍욕을 내뱉는 장면에서는 그 수준을 드러내는 게 극적이었다고도 했습니다. 김하늬 씨도 지유가 가방에서 모자를 미리 빼간 것을 알고 지훈이 화를 내는 장면이 웃기면서도 애잔했다고 했죠.


말이 나온 김에 '남자들은 왜 그렇게 여자들과 한 번 자고 싶어서 안달이냐?'라고 누구 물었더니 임기홍 씨가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나이의 남자들은 구조적으로 다 그러도록 정해져 있어요."라고 말하며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런 시기를 거치는 동안 하도 그런 질문과 힐난을 많이 받아서 이젠 그런 취급을 받아도 불쾌하지도 않은 지경일 거라고 말해 모두를 웃겼습니다.


저는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다시 돌아가서 현금 대신 카드 포인트로 월급을 준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굉장히 상징적인데 그걸 잘 살린 게 마음에 든다고 했고 박재희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이  좌절하는 대신 그 포인트로 회사 물건을 할인가로 사서 되파는 방식으로 돈을 만드는 걸 보고 어떤 신선함과 애잔함을 동시에 느꼈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 세대는 그런 식으로라도 세상을 헤쳐나가고 마지막에 조성진의 음악을 듣는 것 따위로 위안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해졌다는 것입니다. 윤혜자 씨는 어렸을 때 빼고는 20년이 넘도록 소설을 안 읽고 살다가 독하다 토요일을 계기로 소설을 매달 한 권씩 읽게 된 즐거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이번 시즌까지 따져 최소한 스물네 권의 소설책을 읽으면서 소설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죠. 예전에는 소설은 심각한 이슈를 다루거나 교훈적인 결론이 있어야 한다는 게 무의식적으로 깔려 있었는데 오늘처럼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고 나면 '그냥 쓰고 싶은 걸 정확히만 써도 이야기가 되는구나' 하는 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박재희 씨가 옆에서 "줄거리는 없는데 이야기가 있어요."라면서 작가가 배치한 여러 가지 상징들 때문에 이 세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도 말했습니다.


김은주 씨는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너무 재미가 없고 '밑줄 칠 데가 한 군데도 보이지 않아서' 괴로웠는데 다시 한번 읽어보니 맨 앞에 실린 <잘 살겠습니다> 같은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손해보지 않으려 하고 나름 주관이 뚜렷한 요즘 사람들을 잘 그려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정아름 씨는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가 너무 재미있어서 두 번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요즘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는데 장류진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놀랍게도 자신을 3인칭 시점으로 떨어뜨려 놓고 바라볼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백 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은 특히 슬펐는데 어느 순간 마치 유체이탈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위로를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는 소감이었습니다. 이번에 모인 사람들 중 가장 호의적인 독후감이 아니었나 합니다. 윤혜자 씨가 소설가는 단편만으로는 알 수 없고 장편소설을 읽어봐야 그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데 만약 여기 실린 작품 중 장편으로 개작을 한다면 어떤 작품이 좋을 것 같냐는 질문에 여러 가지 의견들이 쏟아졌지만 결국 가장 상징성이 높은 표제작이 많은 표를 받았습니다.


그 밖에도 성매매 장소로 오인받은 오피스텔이 등장하는 <새벽의 방문자들>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일단 매우 잘 쓴 소설이고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치밀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N번방 사건'이 다시 화제에 올랐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나왔던 사건 이야기(오피스텔에 서는 여성이 성매매 여성으로 억울하게 지명받아 강간을 당했는데 가해자가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건)를 서동현 씨가 하면서 모두들 분노에 떨었습니다. 그밖에도 냉장고에 대한 노래 '냉장고 송'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던 뮤지션의 이야기 <다소 낮음>이나 갑과 을의 위치가 변하는 경험을 소재로 쓴 <도움의 손길>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서동현 씨가 요즘 읽은 소설 중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가 너무 재밌어서 두 번이나 읽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주간 문학동네' 연재로 70% 정도까지 읽다가 바빠서 못 읽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워낙 정세랑의 팬이기도 해서 이 책은 종이책으로 다시 사서 읽기로 했습니다. 성북동 소행성에서의 모임이 두 번째이긴 하지만 처음 오는 분들도 많아 간혹 집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총 11명 정원 중 오진이 씨 빼고는 모두 참석을 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윤혜자 씨가 준비한 음식들과 와인으로 저녁을 대신하면서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최용석 씨가 '당산동커피' 문을 닫고 오느라 조금 늦게 오긴 했지만 함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고양이 순자까지 모임 테이블 한쪽에서 참견을 하며 앉아 있어서 많은 웃음을 주었습니다. 밤이 늦어 모임이 끝났는데 늦게 온 최용석 씨가 아쉬워하는 것 같아 윤혜자 편성준 서동현 김은주 이렇게 다섯 명이 2차로 '만섬포차'에 가서 술을 마셨습니다. 얼마 전 창작자 지원금을 받았다는 김은주 씨가 술값을 계산해서 고마운 마음으로 일어섰습니다.

독하다 토요일 시즌4가 끝을 맺었습니다. 이제 뜨거운 여름이니 두 달 정도 쉬고 9월부터 새로운 시즌을 시작할까 합니다. 회원 모집은 기존 멤버를 중심으로 다시 할 생각인데 10명 내외라는 모임 규모는 그대로 유지할 생각입니다. 더운 여름입니다. 모두 힘들더라도 마스크 잘 쓰고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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