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소행성 시즌2
한가한 일요일 오후. 마루 순자 옆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아내가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탁탁 터는 소리가 나길래 마당으로 나갔다. 아내는 널 분량이 얼마 안 되니 혼자 해도 된다며 나오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둘이 하면 빠르지."하고 마당으로 나갔다. 내가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주면 아내가 너는 방식이었다. 내가 반바지를 들고 가서 널었더니 조금 후 아내가 반바지를 내려 앞단추를 잠그고 팽팽하게 해서 다시 널었다. 나는 아내가 빨래 너는 걸 보며 감탄하며 말했다.
"빨래 널기 대회가 있으면 당신을 내보내야 하는데."
"왜?"
"당신은 빨래 너는 데 원칙이 있잖아."
"그렇지, 나는 원칙이 있지."
"하하하."
"하하."
아내가 나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 소리 높여 웃는 동안 나는 안으로 들어와 설거지를 조금 하고 마른행주로 그릇들의 물기를 제거했다. 아내가 안방으로 들어간 뒤 젖은 행주를 주방에서 빨아 밖으로 나와 빨래건조대를 쳐다보니 행주를 널 공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티셔츠를 하나 다른 곳으로 빼서 널고 거기에 행주를 널려고 했는데 그러면 티셔츠를 널 공간이 없었다. 이럴 수가. 양말도 속옷도 다 자신들이 있을 곳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할 수 없이 작은 빨래건조대를 하나 더 꺼내서 행주를 단독으로 널어 보았다. 다 널고 대문 쪽으로 가서 바라보니 따로 널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많이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에 잠깐 으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