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소행성의 말하는 고양이 순자
고양이나 개를 키우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동물을 상대로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물론 진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고 사람이 혼자 묻고 스스로 대답하면서 위안을 얻는 일방적 행위일 뿐이라 동물들의 입장에선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는 훌륭하다>에 나오는 강형욱 훈련사의 말을 빌리자면 주인들이 개에게 하는 "아이고, 우리 둥이...... 배고프지?" "밖에 나갈까?, 산책 갈래?" "조이, 졸려?" 등의 멘트는 그저 "우우, 우우~ 우우웅...... 하는 식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순자가 처음 왔을 때부터 계속 말을 시켜왔다. 욕실에서 두부 모래 사이의 똥오줌을 치워 주면서도 말을 시켰고 매일 두 번씩 사료를 주면서도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순자가 언어를 구사할 리가 없다. 벌써 3년이 넘도록 똑같은 상황이다.
"순자야."
"......"
"순자, 여기서 뭐해?"
"......"
"순자......"
"앵~!"
순자가 마지못해 앵~ 하고 짧게라도 대답을 하면 아내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대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어도 순자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며칠 전엔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는 친구가 놀러 와 마루에서 와인을 마시며 놀았는데 주방에서 일하던 아내가 아일랜드 식탁 앞 의자 위에 누워 있는 순자에게 또 말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웬일인지 순자가 아내와 눈을 맞춘 채 계속 대거리를 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순자야~"
"앵!"
"순자!"
"앵!"
아내가 부를 때마다 교활하게 단답형으로 반응을 보이는 순자를 보면서 이건 일종의 '서비스 타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쟤가 뭐 필요한 게 있나 보다. 그날 아내는 와인에 기분 좋게 취해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마루로 나가 보니 순자가 대뜸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며 말을 걸어왔다.
"혜자, 요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더라."
"응, 우리 집엔 나쓰메 소세끼 전집이 있으니까."
"그거 백 년 전 소설이잖아. 너무 구닥다린데..."
"걱정 마. 너 땜에 아니고 그냥 소설을 좋아해서 읽는 거니까."
"굳이 따지자면 나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보다는 사노 요코의 '100만 번 산 고양이'쪽에 더 가깝거든."
"얼씨구."
순간 순자가 자신의 이미지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능이 올라가면서 그런 '허영의 불꽃'도 늘어나는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면 사회생활이라는 게 다 그런 것 아닌가. 누구나 다른 이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를 신경 쓰면서 살아간다. 남이 찍어준 자기 사진을 보면 대부분 잘 안 나왔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혼자서 거울을 볼 때 좋아하는 각도가 따로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던가. 문득 순자는 이런 것까지 신경 쓰게 된 지금이 더 좋을까,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스물한 시간씩 쿨쿨 잘 때가 더 행복했을까 궁금해져 순자를 쳐다보니 그녀는 어느새 햇볕 드는 마루 끝에 누워 눈을 꼭 감고 있다. 오늘치 '토킹 타임'이 끝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