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소행성의 말하는 고양이 순자
한옥을 고쳐 이사를 온 지 두 달이 조금 넘었다. 처음엔 한옥으로 올 생각도 없었고 그저 성북동 꼭대기에서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가 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빈 한옥집을 발견하게 되었고 마침 문의했던 부동산에서 그 집 열쇠를 가지고 있으니 한 번 가보라고 내주는 바람에 그 날 당장 한옥 안으로 들어가 보게 된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낡았지만 반듯하고 편안해 보이는 이 한옥의 정취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이 조용한 골목에 있는 한옥에 들어와 텅 빈 마당과 툇마루에서 다리를 뻗고 살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서 무턱대고 계약을 했다. 한옥 전문 목수인 임정희 목수님을 다시 불러 공사도 시작했다. 그게 2월 초의 일이다. 계획에 없던 결정이었기에 공사비와 이사 자금을 마련하느라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마침 둘 다 놀고 있던 때라 돈은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는 많아 두 달간 진행된 공사장엔 매일 갈 수가 있었다. 우리는 매일 오전마다 공사장에 들러 목수님과 의견을 교환하고 사진을 찍은 뒤 사라졌다. 자칫하면 건물주의 유세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사장에 머무는 시간은 하루 10분 정도로 제한했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목수님과 장인들에게 양질의 간식을 사다 드렸다. 목수님이나 인부들은 맥도널드 햄버거보다 오보록이나 샤또블랑 같은 빵집의 단팥빵과 크림빵을 더 좋아하셨다. 누구나 좋은 음식은 똑같이 알아보고 몸으로 혀로 느끼는 것 같았다. 간식을 준비하는 우리의 정성 어린 마음은 성실한 공사와 시공으로 이어졌고 신이 난 우리는 매일매일의 공사 진행 상황을 생중계하듯 ''도시형 한옥 수리하기' 같은 제목으로 브런치에 연재했다.
이사를 오고 나자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공사 중간에도 불쑥 들러 간식을 사주고 가곤 했던 분들은 정중히 날짜를 물어 우리 집으로 왔고 혼자 또는 둘이 온 사람들의 경우엔 늦은 밤까지 우리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며 놀다가 손님방에서 자고 갔다. 고양이 순자는 갑자기 넓어진 집에(전에 살던 집은 13평짜리였다) 적응을 못하고 며칠씩 마루 여기저기를 돌아다며 불안해하더니 어느 날인가부터 마루에 있는 의자들 좌석을 옮겨 다니며 자기 시작했다. 침실로 가는 쪽문과 화장실에 낸 순자 전용 출입문 사용법을 익히는 데 보름 정도가 걸렸지만 결국은 해냈다. 잠자리와 화장실이 해결되자 순자 생활에 필요한 기본 요소는 다 갖춘 셈이 되었다. 다만 손님들이 문제였다. 순자는 워낙 낯선 사람들을 좋아하는 이상한 고양이이긴 했지만 그래도 툭하면 단체로 밀려드는 손님들은 좀 버거운 것 같았다. 특히 짓궂게 구는 어린이 손님들이 오면 도망을 다니느라 바빴다.
아내가 속해 있는 '시인의 마을'이라는 모임 회원들이 놀러 온 적이 있었다. 마침 우리가 한옥을 다룬 '랜선 집들이'라는 아침방송 프로그램 녹화를 하기로 한 날 온다고 해서 날짜를 변경할까 하다가 어차피 이번엔 밖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서는 간단히 차만 마시기로 했으므로 그대로 강행하기로 했다. 오후 2시에 시작된 한옥 촬영은 저녁 7시가 되어서 끝이 났고 아내는 7시가 되자 먼저 약속 장소인 구포국수로 갔다. 촬영팀이 순자를 귀여워해서 다행이었다. 저녁 겸 술안주로 해물전과 오징어튀김 등을 먹은 시인의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와서 한옥을 칭찬했다. 시인의 마을 사람들은 작가, 교수, 화가, 무용감독, 대기업 임원 등 모두 그 면면이 쟁쟁한 분들이라 어떤 분야의 주제가 등장하더라도 화제가 끊이질 않았다. 맥주를 더 마시는 분도 있었고 막걸리를 마시는 분도 있었다. 처음엔 순자도 테이블 끝에 앉아 손님들의 손길을 받더니 어느 순간 조용해졌고 나중엔 뭔가 이슈가 생겨 서로 목소리를 높이다 보니 거실이 떠나갈 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그렇다고 싸우거나 하는 건 아니었고 그냥 다들 열정이 좀 넘치는 분들이었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서로 볼륨을 높여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누가 "순자가 없다!"라고 외쳤다. 워낙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오늘 좀 스트레스가 많겠구나 생각은 했지만 아무도 안 보는 새 밖으로 나가버렸다면 이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사색이 되어 순자를 찾아 집 안팎을 뛰어다녔다. 그때 교수님 한 분이 가만히 있으라고 하며 자기가 순자를 찾아주겠다고 했다. 교수님은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순자야, 순자야~" 라고 부르고 다녔다. 전에 '고양이 탐정'을 만난 적이 있는데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을 땐 크게 외치는 대신 나지막하게 이름을 부르며 다녀야 한다고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한참 순자를 부르고 다녔더니 어디선가 "애앵~"하는 대답 소리기 들리는 것이었다. 순자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아내와 내가 자는 침실에 있는 붙박이 옷장 안이었다. "아니, 거기는 손잡이도 없는데 어떻게 열고 들어갔대?" 한지를 발라 상대적으로 무게가 가벼운 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순자가 발로 쉽게 열 정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순자 목소리는 안에서 나는데 문은 완벽하게 닫혀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가 문을 열자 순자가 화난 표정으로 튀어나와 마루 구석으로 갔다. 손님들은 순자를 찾아 다행이라고 하면서 밤이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하고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자 덕분에 이야기의 흐름이 깨져버린 것이다. 아내와 손님들을 배웅하고 들어와 뒷정리를 좀 했다. 너무 치울 게 많아 다음날 천천히 하기로 하고 자리에 누웠다. 방송 출연에 손님맞이까지 치르느라 정말 긴 하루를 보냈다. 아내는 순자를 찾아 정말 다행이라고 말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마루로 나가보니 순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앉아 있는 것이었다. 아직 햇볕이 나기 전이라 마루는 여명에 젖어 있었다. 정수기로 가서 찬 물을 한 잔 받아 마시는 나를 지켜보던 순자는 이내 눈길을 마당 쪽으로 돌렸다. 그 무심한 태도에서 이상하게 친근함이 느껴졌다.
"야, 어젠 어떻게 된 거야? 옷장엔 어떻게 들어간 거야?"
"나한테 옷장문 여는 무선 리모컨이 있거든."
순자가 농담을 했다. 어제는 자신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너무나 피곤한 하루였는데 손님들은 너무 힘이 넘치고 해서 뭔가 모임을 빨리 끝낼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하다가 결국 옷장으로 들어가는 아이디어를 냈다는 것이었다.
"야, 그래도 그렇지. 얼마나 놀랐는데. 그리고 그때 니가 없어진 걸 사람들이 모를 수도 있었잖아?"
"그럴 리가. 내가 사라지기 전 그 교수한테 5분 후 나의 부재를 느끼도록 최면을 걸어놨는데."
"야, 뻥 좀 치지 마라."
"근데 혜자는 평소엔 까칠하게 포지셔닝 잘하다가 왜 손님들만 오면 그렇게 물렁해지냐?"
"혜자가 뭐가 까칠하다고."
"어이구, 저 쪼다."
주인을 능멸하는 고양이 때문에 살 수가 없다. 그런데 가끔은 주인이(물론 주인이란 생각을 전혀 안 하시지만) 못하는 일을 대신해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가끔은 실천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내가 또 이 고양이 때문에 살지' 하는 양가적 감정이 몰려온다. 아, 고양이한테 지기는 싫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