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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15. 2020

아침운동과 화장실부심

성북동 소행성 시즌2

성북구청 옆에 있는 일흥 콩나물국밥집. 메뉴는 콩나물국밥과 모주 딱 주 가지뿐인데 국밥은 토렴을 해서 뜨겁지 않고 맛이 순하다.

성북천에서 청계천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보문동까지 갔다고 돌아오는 아침 운동길에 일흥 콩나물국밥집 간판이 보이길래 걸음을 멈추고 아내를 꼬셨다. 아내는 망설였지만 이내 넘어왔다.


성준) 여보, 콩나물국밥 먹고 갈까?

혜자) 난 괜찮지만 당신을 위해서.


성북구청 옆에 있는 일흥 콩나물국밥집은 메뉴가 콩나물국밥과 모주 딱 주 가지뿐인데 국밥은 토렴을 해서 뜨겁지 않고 맛이 순하다. 국밥을 다 먹고 나와 집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어제 결리던 고관절은 좀 어떠냐고 묻길래 이제 거의 다 나았다고 말했다. 어제 오후에 답십리에 있는 하늘땅한의원에 가서 약침을 맞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한성대입구역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거의 다 왔을 때 짐을 옮기는 철제 카트가 내 발목을 냅다 밀고 들어왔다. 어떤 70대 할아버지였다. 나는 짧게 비명을 지르며 발목을 부여잡았다.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했다. 아내가 깜짝 놀라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그냥 빈 카트를 밀고 보도블록 안쪽 인도로 가버리자 사람들이 욕을 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할아버지가 다시 뛰어와 고개를 숙이며 "미안합니다."라고 사과를 했다. 뛰어오는 걸음걸이의 보폭이 짧고 덜덜 떨리는 게 몸이 성치 않은 것 같았다. 농협 앞에서 과일을 파는 아저씨가 "그러게 짐 옮길 때는 조심하라고 했잖아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괜찮다고, 조심하시라고 말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잘 걸어가던 아내가 마트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으으, 나지막한 비명을 질렀다.  


혜자) 으으.

성준) 왜 그래?

혜자) 마트에도 가야 하고 똥도 마렵고.

성준) 그럼 똥이 먼저지. 마트는 이따 다시 오자.

혜자) 그럼 내가 마당에 있는 화장실 쓸게.

성준) 그래, 뛰자.


우리는 뛰기 시작했다. 급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그 심정을 잘 알기에 나는 앞서 달리며 아내의 진로를 확보했다. 백옥세탁소와 GS25 편의점을 지나 우리 집으로 통하는 큰 골목에 들어섰을 때 디미방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하시던 남자 사장님을 만났다. 사장님은 마스크를 쓴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오는 우리를 보고 조깅 중이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성준) 안녕하세요?

사장님) 아이구, 두 분 다 아주 활기차시네요!

성준) 아, 네. 하하.


아내도 사장님에게 인사를 했으나 발걸음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그대로 달렸다. 앞서 달리던 나는 삐져나오는 웃음을 깨물며 아내에게 물었다.


성준) 솔직히 말할 걸 그랬나? 똥 때문이라고.

혜자) 안 돼...... 내가 마당 화장실로 갈게!


내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대문을 열어주자 아내는 곧장 마당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고 나는 천천히 걸어 침실 화장실로 갔다. 예전에 살던 언덕 꼭대기의 집은 화장실이 하나라서 어느 날 아침 옆에 있는 중학교 교직원 화장실까지 뛰어간 적도 있었는데. 이제 우리 집은 손님방에 있는 화장실까지 화장실만 세 개인 도심형 한옥이 되었다. 나름 '화장실 자부심'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된 것이다. 오늘 아침의 일기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아내와 나는 오늘 아침 각자의 변기 위에 앉아 급똥과 화장실부심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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