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의 영화 [죠스]를 다시 보고 느낀 점들
상어가 나타난 해수욕장을 폐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진 해안가 마을의 경찰서장이 식탁 앞에 앉아 있다. 식인 상어가 설치고 다니니 당장 해변을 폐쇄를 해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그러려니 여름 한철 장사로 일 년을 먹고사는 마을 주민들과 유권자들을 신경 쓰는 시장의 반대 또한 만만치가 않다. 아빠는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싼다. 맞은편에 앉은 네 살짜리 아들도 아빠를 따라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린다. 깍지 낀 손을 이마에 대고 눈을 감으면 아들도 똑같이 한다. 아침 식당으로 들어오던 엄마가 두 남자가 하는 짓을 신기한 듯 쳐다본다. 아들이 자신을 따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아빠가 괴물처럼 얼굴을 찌푸리자 아들도 괴물 흉내를 낸다. 아빠가 말한다."이리 와. 아빠에게 뽀뽀해줘." "왜요?" "지금 그게 필요하니까."
오래전 TED에 출연해 강연을 했던 '떡밥의 제왕' J.J. 에이브럼스는 영화 [JAWS]에서 이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말 성공하고 싶다면 이 장면이 암시하는 것처럼 작품의 전체 흐름과 캐릭터를 읽고 그걸 훔쳐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저 상어나 괴물만 훔치려고 한다고 말한다. [죠스]가 히트한 이유는 상어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서 관객들에게 상어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한 것 때문이라는 말도 한다. 마치 마이크 니콜스의 [졸업]에서 차 속에 있던 두 남녀의 대화 소리가 관객에게는 들리지 않아서 그들의 데이트가 더 애틋하고 흐뭇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 TV 성우 더빙판으로 [죠스]를 보았지만 이 장면은 J.J. 에이브럼스 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 문제의 장면을 보고 싶어서라도 죠스는 다시 한번 극장에서 봐야 할 작품이었다.
어제저녁 CGV명동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초기작 [죠스]를 보았다. [블루 썬더]의 로이 샤이더와 [밥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의 리처드 듀레이퍼스가 새파랗게 젊었던 시절의 영화다. 에이브럼스의 말대로 이 영화에서는 상어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당시 '나무로 상어의 일부분만 만들어 물속에 집어넣고 손으로 흔들어 가면서 찍었던'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상어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관객들이 각자 상상하는 상어의 모습이 완성되는 의외의 효과가 생긴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잡은 작은 상어 뱃속을 주인공들이 갈라 보는 장면에서 감탄했다. 저녁에 와인 두 병을 들고 브로디 서장을 찾아갔던 후퍼는 지금 당장 나가서 상어의 뱃속에 소년의 시체가 들어 있는지 없는지 조사해 보자는 브로디의 말을 듣고는 의기투합한다. 창고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상어의 배를 가르고(상어는 보이지 않지만 관객들은 후퍼가 상어 뱃속에서 뭔가를 꺼낸다고 생각한다) 미처 소화되지 않은 물고기들을 꺼내던 후퍼가 뱃속에 들어있던 철제 자동차 번호판까지 쨍그렁하며 바닥에 던지며 말한다. "상어는 뭐든 다 먹죠."
세계 최초의 블록버스터를 대형 스크린으로 다시 보는 맛은 각별했다. 물속 상어의 시점과 수평선을 바라보는 카메라 시점을 번갈아 오가며 맨 처음 희생자를 보여주는 장면의 처리부터가 뛰어나고 서서히 해안가로 번지던 공포의 기운은 존 윌리엄스의 유명한 테마 음악 덕분에 점점 더 고조된다. 첫 번째 희생자가 있었다는 것을 숨겼다는 이유로 두 번째 희생자의 어머니에게 공개적으로 뺨을 얻어맞는 브로디의 모습도 개연성이 뛰어났다. 블록버스터라고 무조건 터뜨리고 때려 부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스필버그는 최초의 블록버스터 작품에서부터 잘 알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배 안에서 퀸트 선장과 후퍼가 서로의 상처를 내기하듯 자랑하는 장면을 보고 '아, 리쎌 웨펀 시리즈 세 번째인가에서 멜 깁슨과 르네 루쏘가 하던 수작이 바로 이 장면을 베낀 것이었구나'라고 깨닫고 혼자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나 말고 네 명의 관객이 더 있었을 뿐이었지만(두 명은 과자봉지를 몹시 부스럭거리며 영화를 보던 외국인이었다) 상영 시간 내내 객석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관객은 영화가 다 끝나자 혼자 박수까지 쳤다. 영화를 찍는 동안 너무나 고생스러워서 스필버그는 앞으로 바다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을 것이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지만 그가 만든 [죠스]는 아직도 수많은 팬들이 찾아와 반복해서 보는 걸작이 된 것도 즐거운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