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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05. 2020

상처 나고 덴 마음에 바르는 화상연고 같은 책

림태주의 [관계의 물리학]

마음이 심란해 잠을 설쳤다.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져 괴로웠고 좀처럼 돈이 되지 못하고 있는 나의 글과 생각들이 생계의 위협 지경에 이른 것도 처참했다. 밤늦도록 자지 않던 내가 또 새벽부터 일어나 퉁탕거리고 돌아다니자 아내는 화를 내는 척하며 내 걱정을 했다. 나는 마루 책장으로 가 우두커니 책 등을 바라보다가 림태주 시인의 에세이 [관계의 물리학]을 꺼내 툇마루로 가서 책을 열었다.


도대체 아침부터 왜 이 책인가. 세상과 나와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물리란 무엇인가. 힘을 주면 짜부라지거나 부서지는 게 물리적 현상이고 무거운 건 가라앉고 가벼우면 뜨는 게 물리의 이치 아닌가. 게다가 '물리학'이라니. 이건 의심할 여지없이 언제나 그렇게 작동된다는 진리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다시 펼 본 책은 힘을 다룬 지상의 물리학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우주를 탐구하는 천체물리학이었다. 나와 타인의 관계, 나와 세상의 관계, 기타 삼라만상의 모든 관계의 의미와 거리에 대한 이야기들로 빼곡했다. 이 책은 제주도의 독립서점 <디어 마이 블루> 1주년 기념행사 때 샀고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림태주 시인에게 친필 싸인까지 받은 책이라 이미 몇 번을 들춰보고 군데군데 밑줄까지 그어놓았는데도 매번 이렇게 또 새로 읽는 척을 한다.

관계의 물리학은 말한다. 어쩌면 지구는 관계의 힘으로 돌아가는 건지도 모른다고. 이 책을 쓴 림태주 시인은 "니 몸을 마음처럼 여기고, 니 여자를 따순 밥처럼 여겨라"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되새기며 그 말이 결국 사랑하라는 말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중력과 인력 등에서 관계의 질서와 사랑의 원리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철학자 헤겔이 한 '마음의 문을 여는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 있다'라는 말에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원하는 걸 자세히 표현해야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깨닫기도 하고 '인간의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라캉의 말에서는 '중요한 건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떤 세상을 꿈꾸느냐다'라는 대승적 결론도 이끌어낸다. 이는 평소에 언어를 갈고닦는 걸 업으로 삼는 시인의 산문이라서 가능한데, 특히 [그토록 붉은 사랑]을 쓴 림태주 시인의 글이라 현란하고 아찔한 비유들이 발목지뢰처럼 도처에 묻혀 있다.  


심란하던 나의 마음은 비 오는 아침 통영의 민박집에서 수선화와 봄비의 관계에 대해 추리하던 시인의 유쾌한 오지랖 부분을 읽으면서 서서히 풀렸다. 그리고 '아까워서 아낀 그 말'이라는 글의 내용이 내가 페이스북 대문 '대표 콘텐츠' 란에 올려 둔 '마지막 순간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와 같은 내용임을 깨닫고 속없이 기뻐 웃기까지 했다. 아내가 만들어준 카레로 늦은 아침을 먹는데 고양이 순자가 와서 할짤할짝 물을 마시자 아내는 "우리 집에서 순자 니가 제일 속 편하구나."라고 감탄했다. 나도 순자를 바라보며 웃었다. 상처 나고 덴 마음에 화상연고를 발라서 그런지 아침 일곱 시쯤보다는 좀 견딜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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