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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06. 2020

단순하지만 설득력 있는 하드보일드 액션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서부극이나 무협물에서 가장 매력적인 설정 중 하나는 꽤 오랫동안 고수로 통하던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더하고' 은퇴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세상사가 그렇게 주인공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인남(황정민)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킬러로서의 마지막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하지만 결국 그 일 때문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것도 하필  자신이 해치운 자의 친동생이자 백정이라 불리는 레이(이정재)가 추격자다. 그 와중에 태국에서 벌어진 납치 사건 때문에 인남은 방콕으로 간다.


흔히 액션 영화라고 하면 무조건 때려 부수고 달리는 것부터 떠올리지만 정말 시나리오가 좋지 않으면 안 되는 영화가 바로 액션물이다. 2010년에 개봉한 [아저씨]나 2013년도 영화 [신세계]를 TV에서 다시 봐도 재미있는 건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말이 되기 때문이다. 액션물은 등장인물들이 목숨 걸고 벌이는 게임이기 때문에 복수나 살인에 설득력이 없으면 관객을 몰입시킬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일단 합격점이다. [추격자] [황해]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던 홍원찬 감독은 느와르의 주인공들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재인 불안감이나 살인청부, 복수 등은 물론 부동산 사기극이나 납치, 장기매매처럼 얼핏 상관없어 보이는 시건들까지 하나로 엮어서 이야기를 더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만든다.


게다가 일본과 태국에서 진행된 로케이션 덕분에 칼은 물론 기관총이나 수류탄 등이 등장해도 거부감이 없다. 액션 영화는 처음이라는 홍경표 촬영감독의 공력은 좁은 복도에서의 칼부림 장면과 시내 카 체이싱 장면 등에서 특히 빛난다.  엄청 스피디하면서도 안정된 화면 구성 덕분에 관객들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전혀 없는 것이다. 황정민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연기와는 결이 다른 모습을 보여줘 반갑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했고 정부기관 출신이었던 점을 잘 살린 억양과 대사 속도, 그리고 멋을 부리지 않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대사 구사력 등은 이 배우가 감독과 얼마나 잘 소통하고 있는지 짐작하게 해 준다. 그에 비해 이정재의 악역은 설득력이 좀 떨어질 수도 있었는데 캐릭터의 힘으로 밀고 나가 성공한 케이스다. 처음에 긴 흰색 코트를 입고 장례식장에 나타나는 이정재는 화면을 압도하는데 알고 보면 타겟의 배를 직접 갈라야 직성이 풀리는 살인마다. 정말 무섭다. 감독이나 PD가 영화 예고편에도 등장시키지 않았던 박정민의 감초 연기는 또 어떤가(박정민에 대해서는 스포일을 자제할 생각이다)


아내는 황정민의 옛 애인으로 등장하는 배우 최희서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영화의 소식을 간간히 접했다고 한다. 2019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촬영을 했던 영화는 코로나 19 때문에 개봉을 연기하다가 드디어 8월에 베일을 벗었고 첫날 관객 34만 명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칼이 나오는 장면을 잘 못 보는 아내는 영화의 5분의 1 정도는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고 투덜대지만 나머지는 매우 만족한다고 한다. 사실 오늘 이 영화를 예매한 사람도 아내였다. 우리는 극장을 나서며 황정민이나 이정재의 연기는 물론 최희서나 그녀의 딸 유민이로 나오는 박소이의 카리스마까지 너무 좋았다고 합의를 보았다. 스토리는 단순하게 가고 캐릭터는 풍부하게 살린 웰메이드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권한다. 음향시설이 좋은 큰 극장에서 보시기 바란다. 요즘 잘 나가는 영화음악감독 모그의 음악 또한 너무나 뛰어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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