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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24. 2020

전직 카피라이터의 엄살 섞인 글쓰기 비법들

다나카 히로노부의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


일본 광고회사 덴츠에서 24년간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긴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의 책이다. 트위터에 썼던 영화평이 화제가 되면서 글쓰기에 눈을 뜬 저자는 제목에서도 느껴지지만 카피라이터다운 입담과 재치로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을 독설처럼 퍼붓는다. 실제로 이 책엔 글쓰기 비법 같은 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웬만하면 글을 쓰지 말고 다른 일을 하라고 충고한다. 다만 '자신이 읽어서 재미있는 글을 쓰는 게 제일'이라거나 '글을 쓰기 전엔 인터넷만 뒤지지 말고 도서관에 가서 아날로그 자료들을 찾는 게 진정 거인의 어깨에 기대는 방법'이라는 것 등은 저자가 실수로 토로한 진심처럼 느껴진다.


나는 글쓰기에 대한 엄살 섞인 잘난 체보다 저자가 광고회사에 들어갈 때 자기소개서에 '전직 트럭 운전사'라고 썼다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고만고만한 카피라이터 지원자들 중 트럭 운전사로 일했다고 하는 청년이 나서서 재미있었던 일화들을 소개하다 보면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실제 이 방법으로 일본 최고 광고회사인 덴츠에 입사했다. 물론 학생 시절 열심히 했던 활동과 활용 가능한 것을 쓰라는 칸에 "4톤 트럭에 대해서라면 무엇이든 물어봐 주십시오."라고 쓴다거나 가장 힘들었던 일과 그 대처 방법에 "보통자동차운전면허시험에서 세 번이나 떨어졌는데, 그 후 트럭 운전사가 되어버린 일"이라고 쓰는 건 이미 카피라이터로서의 자질이 충분했다는 증거다. 존경하는 사람과 그 이유에 '아버지. 결혼을 여섯 번이나 해서.'라고 쓴 건 부록 같은 재치다. 이 인터뷰 챕터를 읽으면서 [결국 컨셉]이라는 책에서 들었던 어느 대학생의 자기소개서 제목 "대학 졸업할 때까지 사귀었던 남자 친구가 24명입니다"가 생각났다. 이 책의 저자든 그 대학생이든 튀는 데는 기술과 용기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문을 닫은 아리랑도서관에서 대출 도서를 반납하라는 문자를 보내왔길래 그냥 들고나가려다가 그래도 독후감을 몇 자 남기는 게 신상에 좋을 것 같아서 휘리릭 써봤다. 글쓰기에 대한 비법을 배우려 하는 사람보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나 자기 비하적인 유머 구사 능력을 기르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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