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우성의 [남자의 클래식]
전쟁이 따로 없다. 얼마 전까지는 너무 바빠서 사는 게 전쟁이라 생각했는데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휩쓴 뒤부터는 집에서 확진자 수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만으로 사는 게 전쟁 같다. 헬멧이나 우주복을 입지 않으면 바깥출입을 못하는 SF를 본 적이 있는데 이젠 정말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전철이나 버스에도 탈 수 없고 편의점이나 마을회관 같은 공공장소에도 들어갈 수가 없다.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될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살아가기만 할 뿐 아니라 어떤 재난이 와도 하루 두 끼나 세 끼의 밥을 먹어야 하고 필요한 생필품을 사야 한다. 없어도 될 것 같지만 음료수나 과자 같은 간식도 필요하고 술 담배 등 중독성 강한 기호품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식품들 말고 또 필요한 게 있으니 바로 영혼의 비상식량이다.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존재라 그렇다. 몸이 움직이기 위해선 단백질, 지방 등 영양소가 필요한 것처럼 마음이든 정신이든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책이나 음악, 영화, TV 프로그램 같은 무형의 자양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소개하려는 책이 바로 바리톤 안우성이 쓴 [남자의 클래식]이다. 사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지경인데 한가하게 웬 클래식 타령이냐고? 그러나 이럴수록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하는 역설의 코드가 숨어 있다.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얻으려면 무수한 비평과 시간의 세례를 이겨내야 한다. 그럼으로써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의 저자인 안우성은 독일과 영국에서 활동한 세계적 바리톤임과 동시에 '클래식이 개인의 삶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고 클래식과 인문학의 접점을 모색해 온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가장 위로가 필요한 순간 자신은 마음의 스위치를 켜듯 레퀴엠을 듣는다고. 그가 듣는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우리가 듣는 레퀴엠은 다른 곡일까? 그렇지 않다. 다만 그 음악이 탄생한 배경과 스토리를 알고 나면 그 가치가 남달라지는 것뿐이다. 이는 롤링 스톤즈의 명곡 '‘Ruby Tuesday'가 그들을 쫓아다니던 어느 그루피(광적인 여성팬을 이르는 속어)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고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가 함께 만들었다는 공식 발표와는 달리 사실은 브라이언 존스와 키스 리처드와 함께 쓴 곡이라는 걸 폭로한 사람은 믹 재거의 여자 친구 마리안느 페이스풀이었다는 깨알 지식까지 알고 나면 곡에 더 애착이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책은 바흐나 하이든 같은 점잖은 작곡가들도 당시엔 기존 보수세력들에게 경거망동한다는 소릴 듣는 신세대였고 그래서 '바로크(baroque)'라는 사조가 사실은 '일그러진 진주'라는 포르투갈어에서 비롯된 속된 표현이었음을 알려준다.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의 아름다운 삼각관계에 대해 알고 나면 브람스의 음악이 더 고결해지고 슈베르트가 <겨울 나그네>를 쓸 때 얼마나 비참한 상황이었는지 알게 되면 그 쓸쓸하고 앙상한 곡의 정조는 더 드라마틱해진다. 모든 곡에는 스토리가 숨어 있다. 연주여행에서 비평가들과 싸움이 붙어 쫄딱 망한 생상스가 오스트리아의 한 시골 마을로 여행을 떠났다가 알바하는 기분으로 자유롭게 쓴 곡이 <동물의 사육제>였다는 일화는 '너희들 곡은 너무 어려워서 대중성이 없다'라는 프로듀서의 말에 발끈해 녹음실에서 즉흥적으로 <Creep>이라는 곡을 만들었던 Radio head의 톰 요크 이야기와 비슷하다.
하버드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기도 한 프랑스 태생의 중국계 미국인 첼리스트인 요요마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6곡 전곡을 연주한 것은 '분열된 세상을 바흐가 구할 것'이라는 그의 철학과 믿음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는 189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헌책방에서 13세의 소년 파블로 카잘스가 우연히 바흐의 악보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훤칠하고 깡마른 몸매에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신들린 듯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니콜로 파가니니는 연주를 너무 잘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평판이 돌 정도였는데 특히 그의 바이올린 줄은 젊은 시절 애인을 살해하고 그녀의 창자를 꼬아서 만든 것이라는 괴소문은 지금 유투브로 돌아다니는 가짜뉴스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이 책은 이런 다채로운 스토리텔링 뒤에 QR코드를 붙여 바로 그 곡들을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그야말로 시청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영혼의 밀키트'가 아닐 수 없다.
안우성은 독일 음대 졸업시험으로 독창회를 할 때 마지막 곡으로 우리 가곡 '산야'를 선택했다. 그간의 공부를 정리하는 뜻깊은 순간에 모국어로 된 노래를 가장 진지한 모습으로 부르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건 일종의 모험이었는데 공연이 끝난 뒤 "난 당신의 노랫말을 단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가슴속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라는 어느 관객의 말에 큰 용기와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누군가에게 꼭 하고 싶은 말들을 적절한 때에 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일이 더 많다. 세련되지 않더라도, 조금 미숙하더라도 서로의 진심을 나누는 일은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남자라는 이유로, 부끄럽다는 이유로 마음을 여는 일에 인색하지 않아야 할 이유다."
'남자의 클래식'이라는 책 제목이 나온 배경 설명인 듯하다. 그러나 책을 다 읽어보면 이는 남자에 국한된 얘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찾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기에 이런 제목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음악을 아는 남자, 외롭지 않다'이고 표지에 두른 띠지의 헤드라인은 "남자의 감정, 클래식에 답이 있다"인데 이건 내가 쓴 카피다. 책이 출판되기 직전에 우연히 출판사에 놀러 갔다가 안지선 대표님의 고민을 듣고 몇 개 써 본 카피 중 하나가 채택된 것이었다. 좋은 책이 독자들에게 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원래 클래식은 모두를 위한 음악이 아니었다. 궁정의 귀족들이나 교회의 높은 분들 아니면 들을 수 없었던 음악이었는데 이젠 평범한 시민 누구나 다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더구나 이젠 '포노 사피엔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이 책을 놓으시라. 그리고 시간이 될 때마다 책이 소개하는 작곡가들의 이야기와 곡에 얽힌 사연을 읽으면서 QR코드로 그 음악을 들으시라. 코로나 19가 창궐하는 세상에서도 내 곁에는 단 한 모금의 위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