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 케네디의 [오후의 이자벨]
브런치에 글을 올린 뒤부터 가끔 이메일을 받는다. 같이 책을 내자는 분도 있고 뭔가 글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에도 한 출판사 직원이 내 브런치의 '요즘 누가 책을 읽어요'라는 페이지를 흥미롭게 읽다가 자기 회사에서 새로 나온 책을 한 권 보내주고 싶어졌다는 메일을 보내온 것이었다. 나는 보내주시면 고맙겠다고 답장을 했고 며칠 후 정말로 책이 도착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2020년 작 [오후의 이자벨]이었다.
소설은 미국의 로스쿨 입학을 앞둔 샘이라는 스무 살짜리 남자애가 파리에 갔다가 누군가의 출판기념회에서 이자벨이라는 서른다섯 살짜리 번역가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1977년의 일이다.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 차이는 물론 이자벨이 유부녀라는 점도 매우 부담되는 만남이었지만 둘의 섹스와 사랑은 거침이 없다. 다만 둘이 만나는 시간과 장소는 일주일에 두 번, 오후에 그녀의 작업실로 한정 짓는다. 이자벨이 인용한 자크 프레베르의 말처럼 '파리는 너무 좁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시간에 샘은 싸구려 호텔에서 나와 호텔 옆 카페에서 정오까지 전날 신문을 읽고, 담배를 피우고, 수첩과 만년필을 꺼내 프랑스어를 익혔다. 이자벨을 만난 후로는 그녀가 적어준 소설 목록을 지참하고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라는 서점에 가서 시어도어 드라이저, 귀스타프 플로베르, 에밀 졸라, 싱클레어 루이스의 소설을 샀다. [빅 픽처]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더글라스 케네디는 이렇게 주인공이 맞이하게 되는 새로운 일상과 약간의 일탈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빅 픽처]에서는 주인공이 살인을 한 후 다른 지방에 가서 사진작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부분의 눈부신 묘사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특이한 점은 이 소설엔 큰 사건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샘과 이자벨의 만남이야말로 큰 사건이고 일탈이지만 작가는 그걸 디폴트로 심어놓고 두 사람의 나머지 인생을 연대기 순으로 쫓아간다. 샘은 술집 스툴에 앉았다가 대화를 나누게 된 시오반이라는 더블린의 변호사와 섹스 파트너가 된다. 레이먼드 챈들러 원작의 영화를 보러 갔다가 만난 레베카와는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 이자벨과 편지를 주고받고 파리에 가서 그녀를 만나기도 한다. 샘은 열흘 동안 산속으로 휴가를 떠나 해먹 위에 누워 존 업다이크의 소설을 읽고 있는 아내 레베카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지금 이것도 좋아. 하지만 인생은 늘 그렇듯 평탄하지 않다. 중간에 알코올 중독이 끼어들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이던에게도 문제가 생긴다. 샘은 절규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가지지 못하는 것만 원할까. 그리고 왜 이렇게 늘 타이밍은 어긋나는 걸까.
이지벨은 진심으로 샘을 사랑했지만 남편 샤를과의 의리를 지켜야 했고 새로 태어난 딸 에밀리에게 닥친 불행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샘도 마찬가지다. 이혼으로 인해 벌어진 경제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뒤늦게 만난 여자 친구는 가장 친한 친구와 바람이 나서 도망을 쳐버렸다. 이자벨도 남편에게만 순종한 것은 아니었다. 샘 말고도 다른 남자를 만났다. 금방 헤어졌지만. 이 정도면 이 소설은 '사실주의적 시각으로 다룬 일탈의 자서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 와중에도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문화적 취향과 문학적 표현들은 3류 소설 같은 줄거리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1977년 흑백 필름 같던 풍경 묘사는 2001년 쌍동이빌딩 참사를 지나 현대까지 이어진다. 마지막에 폐암 덕분에 죽음 앞에 선 이자벨이 병원으로 샘을 불렀던 장면은 찡하다. 이자벨은 샘에게 "자꾸 울면 내보낼 거야. <라 보엠>에서 미미가 죽는 순간 푸치니가 악보의 여백에 뭐라고 적었는지 알아? '공감하되 감상적이지 마라.' 일전에 샤를에게도 똑같이 말했어. 에밀리에게도." 그녀가 인용한 말은 마치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인생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기쁨과 슬픔, 고난과 부조리 역시 마친가지다. 공감하되 감상적이 되진 마라. 마음대로 되는 건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늘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