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의 말하는 고양이 순자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코로나 19라는 역병이 온 세상을 뒤덮어 모든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줄은 정말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 언젠가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은 있었고 환경이나 기후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은 사람들의 심각한 경고도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빠르게 그 재앙이 닥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내와 내가 성북동에서 1940년대에 지어진 한옥을 발견하고 이사를 결심했을 때만 해도 집수리가 끝날 때쯤이면 모든 게 이전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우리는 새 집에 작지만 행복한 집이라는 뜻의 '성북동小幸星'이라는 문패를 달고 행복해했다. 4년 전 성북동 꼭대기에 있던 13평짜리 집으로 이사 들어가면서 지은 이름이었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 이를 가지고 내려온 것이었다. 이름만 지은 게 아니라 이번엔 문패의 글씨도 내가 쓴 것이라 더 뜻깊었다(그 집에 들어오는 사람에겐 웃음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뜻의 '시소당( 始笑堂)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고 왔다). 우리는 이 집에서 각종 문화기획과 집필을 꾸준히 하고 요리와 글쓰기·책 읽기에 관한 이런저런 소모임들을 열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19가 팬데믹이 되면서 모든 계획은 멈춰버렸다.
"당신이 오늘 주차 문제 좀 해결해 줘."
아침밥을 먹으며 아내가 말했다. 계속 망설이고 미루던 '고은정의 제철음식학교 서울' 클래스를 성북동 소행성에서 소규모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한 달에 한 번 지리산에서 올라오시는 고은정 선생의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우리 집은 한옥이 몇 채 남아 있는 동네 골목 안쪽에 위치해 있으므로 주차장이 없고 공영주차장은 너무 위쪽에 있어서 요리수업에 필요한 짐을 싣고 내리기엔 불편했다. 결국 식재료는 아내와 내가 서울에서 마련하기로 했지만 선생의 동선을 위해서라도 주차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사실 골목으로 들어서는 입구의 큰 건물 일층에 차를 여러 대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있긴 한데 '사용불가'였다. 집수리할 때 혹시 임정희 목수님의 차를 한 대만 댈 수 있느냐고 복덕방을 통해 물었다가 안 된다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엔 일층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으면서도 안 된다고 단칼에 자르는 게 얄밉고 불쾌했다. 그런데 아내는 그 집에 다시 한번 가서 문의를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하긴 다른 선택 조건이 없었다.
점심때쯤 그 집으로 가서 인터폰을 눌렀다. 이 건물 주인은 동네에서 장사를 해서 크게 성공했고 건물도 몇 채를 가지고 있는 분이다. 그런데도 이른 아침이면 빗자루를 들고 골목을 청소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된다. 천성이 부지런한 사람인 것이다. 나는 이사 오면서 떡도 돌렸고 새벽에 커피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몇 번 마주쳐 인사를 나누고 얼굴을 익혔다. 편의점 사장님과 친해서 거기 자주 놀러 오는 것 같았다. 일층에 여러 개 달린 인터폰 중 맨 위쪽 버튼을 눌렀더니 문이 덜컹 열렸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 현관문을 열고 나온 사장님을 만났다.
"사장님, 저... 부탁 드릴 게 있어서요."
"예, 뭔데요?"
"한 달에 한 번만 주차장에 차를 좀 세울 수 없을까 해서요. 아, 주차비는 드리겠습니다."
"안 되는데."
역시 단칼에 거절이었다. 도대체 주차장이 저렇게 텅텅 비어 있는데 왜 안 된다는 말이냐. 매일도 아니고 한 달에 하루, 몇 시간만 세우겠다는데.
"주차장이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여기 세입자들이 주차장이 모자라 서로 싸우고 있는 거예요."
"저번에 보니까 어떤 수녀님도 대시던대요?"
"그 수녀님은 또 다른 문제로 제가 할 수 없이 대시라고 한 거구요."
"......"
"사실은 이 옆에 있는 현대자동차 땅을 안 팔고 거기까지 주차장을 냈어야 하는 건데..."
"그걸 이천에 파셨어요? 아이고..."
뭔가 복잡한 사연들이 얽혀 있었다. 사장님은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건물 뒤쪽 골목에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를 내는 데만 일억을 썼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바로 앞에 있는 연립주택과 다투어 지금도 주차 문제로 매일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되어 버렸고, 옆에 있던 땅은 자동차 정비소 측에서 하도 팔라고 조르는 바람에 평당 이천만 원 할 때 팔아서 사모님에게 지금까지 원망을 듣고 있다고도 했다. 다시 되사고 싶어도 이젠 땅값이 너무 올라(평당 오천만 원이 되었다) 그럴 수도 없고 그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입자들 중엔 건물에 주차장이 없어서 회사에 차를 놓고 온다고 아우성을 치는 사람이 있으니 당장 주차 공간을 더 넓히려고 주차장 옆집을 살까 궁리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멀쩡한 집을 사서 헐고 그걸 다시 주차장 만드느라 4억을 쓴다는 게 말이 되는 건지...... 나도 모르겠어요."
귀가 얇은 나는 당장 사장님의 고뇌에 공감하며 자동차 정비소의 얍삽함을 같이 성토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몇 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평당 이천에 그 땅을 사다니, 자동차 정비소는 정말 복권에 당첨된 거나 다름없는 행운을 만난 것이었다. 음, 그런데 내가 여기 왜 왔더라......? 아, 주차.
"그래도 차를 꼭 대야 해서요......여기 말고 어디 또 없을까요?"
"그럼 저쪽에 대요."
사장님이 가르쳐 준 곳을 가보니 정말 절묘한 곳이었다. 자기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예전에 자신이 차를 대던 곳이었고 지금은 옆에 있는 가게 사장님이 저녁때만 차를 잠깐 대는 비밀 장소라는 것이다. 나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 정도만 필요하니 차를 세우기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나는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주차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아내에게 알렸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더니 깐깐한 사장님도 찾아가서 간곡하게 얘기를 해보니 방법이 생긴 것이었다. 아울러 근심거리라고는 없을 것만 같은 사람들도 그리 행복하지 못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건물이 몇 채나 되고 성북동 아래쪽에서 제일 알부자처럼 보이는 그 건물 사장님도 돈 걱정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6시에 울린 알람에 맞춰 마루로 나와 물을 한 잔 마시니 고양이 순자가 책상 위에 오도카니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 일찍 일어났네?"
"넌 수십 억짜리 빌딩이 있으면 그거 팔아서 편하게 살면 될 텐데 사장님은 왜 저런 골치를 썩나, 그런 생각 했지?"
"어떻게 알았어? 너 이제 독심술도 배우냐?"
"그러니까 넌 부자가 못 되는 거야."
"그건 인정해. 근데......"
"걱정 마. 너한텐 저런 건물 생길 일 없으니까."
"이런 개..."
"어허, 고양이한테 개라고 욕을 하면 쓰나."
나를 약 올리는 데 성공한 순자는 빙긋이 웃더니 햇볕을 좇아 마루 끄트머리로 가 눈을 감고 누웠다. 도대체 나도 모르는 부자들의 습성에 대해서 순자는 어떻게 저리 잘 알고 있는 걸까. 하긴 내가 부자로 사는 모습은 나도 쉽게 상상이 안 가긴 한다. 그러나 인생 어떻게 풀릴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내 인생도 아직 다 풀리지 않은 것뿐이야.....'라고 나지막이 중얼거리다가 너무 덧없는 소리라 픽 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