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는 잘 있나요?"라고 은행원이 물었다

성북동 소행성의 말하는 고양이 순자

by 편성준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인생 문제가 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소설가 김훈은 어디선가 인터뷰를 하면서 돈을 꺼내서는 "이게 뜯어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을 불러 모으는 걸 보면 신기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돈은 직접 먹거나 몸에 걸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도 걸핏하면 우리들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돈이 떨어졌다. 아내도 나도 지난 몇 달간 돈벌이가 되는 일을 거의 안 하고 지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막상 닥치니 새삼 당황스럽고 한심하기만 하다. 집수리와 이사에 매진하느라 다른 일을 거의 하지 못했고 중간에 코로나 19 광풍이 불어닥친 후엔 세상이 멈춘 듯해서 돈을 만들 기회는 더욱 적어졌다. 그 와중에 아침마다 운동을 하기로 하고 조깅을 시작한 지 사흘 만에 장마가 시작되는 바람에 밖에 나갈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사상 최장 장마라고 했다. 축축하고 눅눅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지난주에 광고 아이디어를 내는 급한 아르바이트가 하나 들어와서 일을 하고 카피와 아이디어 값으로 삼백만 원을 받기로 했지만 지급은 다음 달 이후가 될 것이므로 당장은 전혀 가계에 도움이 안 된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 술을 사다 마셨다. 아내는 자꾸 이러니까 내가 살이 찌지, 하면서 화를 내지만 막상 내가 편의점에 가서 진로 빨간 뚜껑과 닭가슴살 안주 등을 사 오겠다고 일어서면 '구운 계란도 하나 사 오라'라고 주문을 넣곤 했다. 아내는 요즘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목사가 악마처럼 느껴진다며 불을 뿜었다. 우리는 뉴스 보기가 겁난다는 말을 하면서도 저녁 8시만 되면 뉴스를 틀어 오늘의 확진자 수를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비가 조금 주춤하길래 우산도 안 쓰고 편의점으로 가서 술을 사 왔다. 내가 안주거리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가열하기 위해 포장을 뜯다가 자꾸 실패하는 것을 본 편의점 사장님이 웃더니 "집에서 야단 좀 맞는 스타일이겠네."라며 혀를 찼고 나는 순순히 그렇다고 자백을 했다. 술을 사 왔다. 아내는 술을 마시면서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 미래통합당 사람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저주했다. 코로나 19 때문에 되는 일이 없고 코로나 19 때문에 TV 프로그램까지 재미없어졌다고 화를 냈다. 화를 내거나 흥분하면 술을 마시는 속도가 빨라지기 마련이었다. 술을 벌컥벌컥 마시던 아내는 어느새 그대로 잠이 들었고 나는 술상을 깨끗이 치운 뒤 치실과 양치질까지 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러 나갔는데 순자가 걸어와 인사를 했다.
"술 마시면서 전광훈 욕이나 하면 뭐 나아지냐?"
"정말 미친놈 같아. 그리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사고는 다 치고 다니잖아."
"너희들 지금 돈이 없어서 제정신이 아니지?"
"카드값 때문에 잠이 안 와."
"인간들 참 어리석어. 다 자기가 쓴 건데도 '카드값'이라고 부르면서 남이 쓴 것처럼 얘길 한다니까."
"......"
"카드회사에 전화해서 나눠내는 걸 좀 알아봐."
"리볼빙? 나 그거 신청 안 했는데."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지 어떡해? 그다음에 뭐라도 궁리를 해봐."

순자는 내 걱정을 너무 하는 바람에 말을 많이 했다면서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할 말을 다 해놓고 이런 식으로 딴소리를 하는 게 순자의 특징이다. 아내가 차려준 아침을 먹는데 입이 깔깔해서 잘 들어가지 않았다. 돈 얘기를 하면 서로 짜증부터 내기 때문에 그냥 밥만 먹었다. 점심때 아내가 다니던 출판사 사장님이 오시기로 했기에 장을 보러 동네 마트 홈베이스에 갔다. 장마 때문인지 채소값이 엄청나게 올랐다. 아내는 파 한 단에 오천 원이나 한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별로 산 것도 없는데 오만 원이 넘는 돈이 사라졌다. 손님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 출판사들 얘기, 코로나 19 얘기 등을 했다. 손님이 돌아가고 아내가 은행에 가서 뭔가를 해결하고 오겠다고 하길래 나도 집에서 카드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순자 말대로 이번 달에 돈이 모자라니 신용카드 대금을 좀 나눠내는 방법이 뭐 없겠냐는 리볼빙스러운 질문을 하고 있는데 상담 전화를 받던 직원이 내가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 35만 원어치를 오늘이나 내일 통장에 입금해도 되겠느냐는 역질문을 해왔다.

순간 귀가 의심스러웠다. 내가 잘못 들었나? 포인트 35만 원어치면 도대체 얼마가 입금이 되는 걸까. 포인트니까 현금으로 환산하면 3만 5천 원인가, 3천5백 원이라고 하면 진짜 죽여버리겠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정말로 35만 원을 입금해주겠다는 안내 멘트가 돌아왔다. 오오 놀라워라. 그런데 왜 나는 여태 그렇게 많은 포인트가 쌓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걸까요? 하고 물으니 청구서에 달마다 표시를 해놓는데 내가 안 읽은 것뿐이라고 대답했다(하긴 청구서를 안 읽지 내가). 포인트가 이 정도면 무척 오래전부터 쌓인 거겠네요?라고 물었더니 2019년부터라고 했다. 하하.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지난 일 년 간 카드를 얼마나 쓰고 돌아다녔다는 말이냐, 하는 자괴감이 올라왔다. 나는 리볼빙 서비스를 신청하고 다음 달에 남은 금액을 갚겠다고 말했다. 잠든 포인트를 현금으로 입금해줘서 고맙다고도 말했다. 은행 원은 괜찮다고 하면서 "순자는 잘 있나요?" 하고 물었다. 깜짝 놀란 내가 순자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외쳤더니 은행원은 아뿔싸 하고 당황한 듯 신음을 내뱉더니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순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디다가 우리집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꽈바치고 있는 거냐. 순자야, 너 어디서 유튜브라도 하고 있는 거니? 고양이 유튜브는 어디 가서 찾아야 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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