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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Sep 30. 2020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글쓰기 수다

강원국·백승권의 [글쓰기 바이블]


글쓰기에 왕도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 다독·다작·다상량 해라. 많이 읽고 열심히 써라. 이게 결론인 거 역시 다 안다. 그렇다면 이 책 읽을 필요도 없잖아? 하지만 이렇게 추상화된 아포리즘들은 진실을 전하지 못한다. 진실은 한 땀 한 땀 바늘로 꿰매는 자잘한 팩트들이 있어야만 전해진다. 그래서 뻔한 내용처럼 보여도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 더구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글쓰기 고수들의 시시콜콜한 수다라니.


이 책은 베스트셀러 [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강원국 작가와 [보고서의 법칙]으로 실용 글쓰기의 새 장을 연 백승권 대표가  팟캐스트로 내보냈던 방송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사회를 보는 작가 박사는 책도 여러 권 냈지만 '책 듣는 밤'이라는 낭독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인플루언서다. 나는 팟캐스트는 듣지 못하고 책으로만 '글쓰기 바이블'을 영접했다. 맨 처음 책을 열면 글쓰기 전에 가져야 할 자세부터 이야기하며 슬슬 시동을 거는 강원국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뇌는 무언가 착수했을 때부터 활성화 하기 시작한단다. 그러니 일단 쓰는 게 중요하다. 자판 위에 손을 얹든지 펜을 거머쥐든지 종이 위에 쓰든지 해야 글이 나온다(영화 [파인딩 포레스트]에 나오는 말 : "글을 쓰는 첫 번째 열쇠는 생각하는 게 아니라 쓰는 것이다."). 백승권 작가는 세상의 명문장들을 수집했던 도스토옙스키처럼 좋은 문장들을 많이 모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고 충고한다.


행동을 유발하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내가 리뷰를 쓸 때도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그 책을 읽고 싶게, 그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니까. 평소에 물고기를 잡으라는 충고도 소중하다. 메모를 해야 한다. 메모를 한다는 것은 우연히 생각난 것들을 언젠가 써먹겠다는 다짐이다. 그런데 평소에 메모를 해놓지 않다가 닥쳐서 글을 쓰려는 건 요리를 앞둔 주방장이 물고기를 잡으로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요리를 앞두고 물고기를 잡으러 나간 요리사의 심정은 불안하고 초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혼여행에 관한 글을 쓰라는 주문에 신혼여행지가 어디인지도 모를 정도로 모호하게 글을 쓴 교육생에게 "남편이 혹시 국정원에 다니시냐?"라고 질문했다던 백승권 작가의 이야기가 우스우면서도 기억에 남았다. 구체적으로 쓰고 그림을 떠올릴 수 있는 묘사가 좋은 글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백승권 작가가 예로 든 스티브 잡스의 축사 이야기가 제일 마음에 든다.


스티브 잡스가 학교를 그만두고 리드칼리지를 다니다가 6개월 만에 자퇴하거든요... 그리고 친구 집에 얹혀사는데,  생활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5센트짜리 코카콜라 병을 팔아서 끼니를 때웠다. 매주 일요일 저녁   나은 음식을 먹기 위해 하레 크리슈나 사원까지 11킬로미터를 걸어갔다 왔다."  사람은  병을 팔았다고 얘기하지 않고, 5센트짜리 코카콜라 병이라고 얘기해요. '멀리' 아니라 '11킬로미터' 걸어갔다 왔다고 표현하고요.


그러자 강원국 작가도 알베르 까뮈도 같은 소리를 했다며 "모호하면 비평가가 몰려오고, 구체적이면 독자가 몰려온다."라는 말을 전해준다.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회사에서 글을 쓸 때는 '윗사람이 누구한테 혼나지 않고 나 때문에 승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겨야 좋은 글이 나오고 합평회를 할 때도 '나만 잘 쓰는 게 아니라 모두 잘 쓰게 되었으면'이라는 마음으로 의견을 나눠야 좋은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는 김탁환 작가나 정혜신·이명수 작가를 좋아하는 나의 평소 지론과도 일치하고 "작가의 세계에 누구 하나 더 들어왔다고 경쟁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과도 비슷한 지점이다.


책에는 '아내에게 혼나는 얘기를 썼더니 사람들이 반응하더라'라는 왕년의 페북 스타 강원국 작가의 꿀팁부터 모파상이 플로베르에게 받은 가르침까지 동서와 시대를 가로지르는 이야기들로 빼곡하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글쓰기에 대한 일화들은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은유의 [글쓰기의 최전선]이나 [김탁환의 쉐이크] 같은 책에서 인용한 문장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30개의 글이 끝날 때마다 두 작가가 각자 뽑아 온 '글쓰기 명언'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전부터 좋아하긴 했지만 이 책을 통해 내가 더욱 좋아하게 된 명언은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가 한 "작가는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사람이다."라는 말이다.


다들 엄청난 내공을 소유한 분들이지만 겸손과 보편성으로 무장되어 있는 인성이라 격의 없이 글쓰기라는 신대륙으로 쑥 들어갈 수 있다. 강원국과 백승권은 '글쓰기는 성실하고 좋은 삶으로 연결되는 지름길'임을 알려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러니 지금 서점에 가서 이 책을 구해 읽어라. 읽는 도중에도 자꾸만 글을 쓰고 싶게 만들고 글쓰기에 자신감까지 불어넣어 주는 신기한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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