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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Oct 31. 2020

소설가가 권해줬던 소설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

내가 "데미안은 너무 모호하고 말랑말랑한 게 좀 과대평가된 소설 같아요."라고 말하자 "헤세라면 황야의 이리를 읽어야지요."라고 김탁환 선생이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마침 대학로 동양서림에서 이 책을 마주쳤으니 사지 않고는 배길 도리가 없었다. 이 소설은 인간의 본성과 이리의 본성을 모두 가진 하리 할러라는 고독한 남자의 이야기다. 소설 첫 부분에 등장해 '하리 할러의 수기'라는 글을 편집했다고 주장하는 '편집자'는 할러를 '도시 한복판으로 들어와 군중 속에서 길을 잃은 황야의 이리'라고 묘사한다. 하리 할러 역시 자신을 그렇게 여기고 온순하고 무비판적으로 사는 시민 사회로의 투항을 거부한 채 살아간다. 해진 옷을 입고 다니고 돈이나 안락한 삶을 추구하지 않는 모습에서는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를 떠올리게도 하고 어딘가에 갇혀 지내지 못한다는 대목에서는 영화 [폭풍 속으로]의 패트릭 스웨이지가 연상되기도 한다.


소설은 하리 할러의 수기 안에 있는 <황야의 이리에 관한 소논문>이라는 글을 통해 보다 깊이 그의 본성 안으로 들어간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남자에게서 얻은 소논문이 바로 자신에 대한 글이라는 설정은 비현실적이지만 그만큼  책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 소설이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 이유는 주인공 할러가 정신병에 걸린 아내와 헤어졌다든지 신문에 기고한 전쟁 반대 기사 때문에 비난을 받는다든지 하는 부분이 겹쳐서이기도 하지만 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몇 푼의 보상에 만족하지 않고 별들을 추구하는 삶이었다'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끝까지 자아를 추구하려는 헤세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여성 헤르미네나 마리아와 벌이는 성적 유희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도 보여 주었던 헤세의 이상향(?)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당대에도 히트했지만 1960년대 미국의 히피들에 의해 재발견된 작품이기도 하다. 끝없는 고독과 자유를 추구하는 하리 할러와 스타일도 그렇고 후반부에 나오는 환상적인 장면들은 흡사 마약을 하고 찍은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드니 히피들의 성서가 되기엔 딱이다. 1920년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과감한 발상과 묘사들이다. 'Born to be wild'라는 곡을 연주한 밴드 스테판 울프의 뜻이 '황야의 이리'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번엔 줄도 치고 책장도 접어가면서 꼼꼼히 읽었으니 다음 달 쯤엔 연필을 내려놓고 단숨에 한 번 더 쭉 읽어봐야겠다. 관념과 감성과 마약이 들어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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