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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08. 2020

목포에서 만난 이춘도 선생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일곱 권에 사인을 하다

진도로 가는 날 아침 KTX 안에서 아내가 갑자기 목포에서 이춘도 선생을 만나기로 약속이 정해졌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이춘도 선생은 늘 나와 아내의 글에 관심을 가져주시던 페친이었는데 우리가 목포를 거쳐 진도로 간다는 것을 알고는 잠깐이라도 만나서 책에 저자 사인을 받고 싶어 하셨던 것이었다. 이 선생은 이전에도 우리동네에 사는 최선희 선생을 통해 베제카오일과 고급 와인을 보내 주셨던 분이다.

목포역에 내려 구도심 쪽 광장에서 이춘도 선생을 기다렸다. 조금 있다가 나타난 선생은 가방 안에서 샴페인을 한 병 꺼내서 아내에게 건넸다. 나는 롯데리아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춘도 선생이 예전에 성북동에서 오래 살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영화를 공부했던 남편 선태삼 선생이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는 바람에 시댁이 있는 목포로 내려와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다행히 남편과 함께 유학 갔을 때 공부했던 ‘TESOL’ 실력 덕분에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영어 과외지도를 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며 선하게 웃으셨다.

선생은 내가 문방구를 좋아할 것 같아 가져왔다며 모나미볼펜 조립세트를 선물로 주셨고 가방 안에서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일곱 권을 꺼내 사인을 해달라 하셨다. 출판사에서 증정용 도서에 서명했던 거 말고는 이렇게 많은 권 수에 사인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함께 내민 메모지엔 이춘도 선생 부부의 이름과 이 책 선물을 하고 싶은 분들의 이름이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선생은 내 사인이 선물이라 생각하셨을지 모르지만 정말 큰 선물은 내가 받은 셈이다. 이렇게 따뜻하고 순수한 호의를 일방적으로 받고 사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그리 흔할까. 이춘도 선생과 우리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헤어졌다. 11월의 토요일 오전, 전주에서 있었던 정말 고마운 만남이요 사건이었다.

(*혹시나 해서 글을 올리기 전에 전문을 이춘도 선생에게 보내 허락을 받았습니다. 목포에서 만났는데 저자 사인에는 광주라고 써서 죄송하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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