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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17. 2020

첫 책이 쫄딱 망하지 않아 다행이야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출판기념회 후기


"기분이 어때?"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겨우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고 최소한의 정리만 한 채 자리에 누웠을 때 아내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는 천장을 쳐다보며 이렇게 대답했죠.  

"첫 책이 쫄딱 망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어제저녁 일곱 시,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출판기념회가 열렸습니다. 아내와 제가 책을 내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혹시 저를 믿고 책을 내 준 '몽스북' 안지선 대표나 함께 일한 홍보회사 '타인의 취향' 한정덕 실장에게 큰 피해가 가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출판계에선 '듣보잡'인 제가 아무런 경험이나 인맥도 없이 덜컥 책을 내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다행히 너무 많은 분들이 제 책을 좋아해 주시고 자발적으로 홍보까지 해주셔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기쁘기 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사실, 그런 걱정을 좀 덜게 된 것은 이명수, 김탁환, 장석주 세 분 선생께서 제 원고를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흔쾌히 추천사를 써주겠다고 했을 때부터였습니다. 평소 제가 흠모하는 분들이었고 꼭 추천사를 받고 싶었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한 분 한 분 제가 직접 청을 넣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다 써주신다 할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습니다(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어제 처음으로 보타이를 맸습니다. 출판기념회도 처음, 제가 주인공인 자리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온전한 호의를 가지고 모여주신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캐주얼한 복장으로 나타난 행사의 사회자 양희문 성우는 제가 보타이 맨 것을 보고는 "아, 이럴 거면 미리 언질을 좀 주시든지."라며 뜨악해했지만 이내 이성을 되찾고 특유의 넉살과 순발력으로 행사를 잘 이끌어 주셨습니다. 광장시장 '박가네 빈대떡'의 추상미 대표가 빈대떡, 김밥, 모둠전, 편육, 어리굴젓, 과일과 떡까지 조합한 완벽한 케이터링을 선보였고 오신 분들의 호응 또한 대단했습니다. (단상 위에 있던 저는 물만 마시다가 행사가 끝난 뒤에야 빈대떡 두 쪽과 어리굴젓을 맛보았습니다). 권민정 선생이 디저트로 가져왔다던 밤조림도 인기가 대단했다고 하던데 저는 그걸 한 개도 먹지 못해 억울할 따름입니다.


행사 시작 전에 행사장에 오지 못한 분들의 책에 먼저 싸인을 하고 있는데 마침 입장하는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줄을 서는 바람에 계속해서 싸인을 해드려야 했습니다. 오늘의 싸인 멘트로 '미루지 말고 지금 놀자!'하는 문장을 많은 분들에게 써 드렸지만 특히 다른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들에겐 개별적으로 맞춤한 사연을 써드리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하일주 선생에게는 '선생님이 옆에 계셔서 저희는 늘 든든합니다'라고 써드리고 자기 책은 물론 아들 딸과 아내의 책까지 따로따로 구입한 고등학교 동창 이종수 같은 경우엔 딸의 이름을 적은 뒤 '훌륭한 아빠를 두셨습니다'라고 쓰는 식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타난 데다가 한결 같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주 친한 분들에게도 "그런데 성함이..?"라고 물어 사람들을 실망시켰습니다. 그런데 정말 잘 아는 사이인데도 순간적으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겁니다. 아, 저는 아무래도 사교계나 영업 쪽으로 나가는 건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는 싸인을 하느라 본 행사를 시작도 하지 못하겠다는 안지선 대표의 염려 때문에 싸인을 중단하고 바로 행사 시작을 알렸습니다.


양희문 성우가 일산에서 처음 저희 부부와 우연히 만났던 날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행사 포스터에도 쓰여 있던 '쉰다는 것과 논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라는 화두를 시작으로 저희 부부가 왜 둘 다 놀기로 결심했는지를 털어놓았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에 있는 친구 별장에 가서 한 달간 혼자 지내던 이야기도 했습니다. 글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덜컥 한옥을 사서 그걸 고치느라 두 달간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얘기도 했습니다. 회의를 하다가 우리가 한 얘기를 놓치지 않고 안지선 대표가 멋진 제목을 만들어 낸 에피소드도 소개했습니다. 책을 낸다는 것에 대해 의의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의견을 말씀드렸고, 책을 낸 뒤에 의외로 '별똥별' 같은 짧은 글이 많은 사랑을 받아 놀란 것과 그걸 계기로 깨달은 점들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추천사를 써주신 분들 얘기를 하다가 마침 자리에 와주신 이명수 선생을 모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명수 선생은 모든 심리적 치유의 기본은 '상대에게 마음을 놓는 것, 편해지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저희 부부는 서로 '길 가다가 똥 싼 얘기'까지 스스럼없이 할 정도로 편한 상대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러기에 '바보 같이 살아도 큰일 안 난다'는 생각을 공유하면서 둘 다 놀 수 있었다는 것이죠. 이명수 선생 덕분에 저희는 졸지에 '코르나 19 시대에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는 힐러 커플'로 격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화 [벌새]에서 엄마 역을 했고 저희 부부와는 막역한 사이인 배우 이승연이 나와 제 책 중 '어머니와 전화'라는 글을 감동적으로 낭독해 주고 들어갔습니다. 저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한 곡 불렀습니다. 무슨 노래를 부를까 고민하다가 열여덟 살에 김태화의 목소리로 들었던 이장희의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를 선택했습니다. 노래 가사에 '아내'와 '책' 이야기가 다 나오는 노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책을 낸 몽스북에서 [남자의 클래식]이라는 멋진 책을 낸 바리톤 안우성 선생이 나와 우리 가곡 <산야>를 우렁차게 불러주었습니다.


7시부터 시작된 행사는 9시 10분 전쯤 모두 끝이 났습니다. 행사장 측에서 시간을 엄수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고 코로나 19 상황 때문에라도 길게 끄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습니다. 현장 책 판매를 위해 나왔던 교보문고 직원이 정산을 끝내고 뒷처리까지 깔끔하게 해주었습니다. 화환이나 화분, 꽃을 보내준 분들에게도 감사를 해야 했으나 그럴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 윤혜자의 꽃 선생이기도 한 '이에나'  이주희 선생의 꽃들이 행사장을 훨씬 밝고 사랑스럽게 만들어주었음은 언급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카카오 택시를 불러서 가방과 어쿠스틱 기타, 손님들이 주고 가신 선물들, 화분과 쌀(남자 친구와 함께 온 진주가 쌀을 박스에 넣어 가져왔답니다) 등을 싣고 겨우 집으로 와 정리를 했습니다. 아내는 밤에 간단하게 사진과 후기를 올리는 모양이던데 저는 너무 피곤해서 샤워만 간단히 하고 누웠습니다. 밤 열한 시가 넘어 양희문 성우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제가 너무 졸려 횡설수설했더니 미안해하며 끊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기분이 좋아서 한 전화였을 텐데, 잠결에도 제가 미안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어제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후기를 쓰다가 고등학교 방역 알바를 와서 일은 설렁설렁하며 쉬는 시간마다 책상에 앉아 이 글을 고치고 있습니다. 교감 선생님한테 들키기 전에 얼른 마무리하고 글을 올려야겠습니다. 어제 출판기념회에 와주신 분들, 그리고 오지 못했지만 응원해 주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제 글을 꽤 좋아한다는 잘못된 확신을 가진 채 계속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올해는 물론 내년 상반기까지 전국의 작은 책방 북콘서트를 하며 당분간은 이 책 생각만 하며 살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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