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핀처의 [맹크]
데이빗 핀처 하면 아직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세븐]이다. 브래드 핏이나 기네스 펠트로를 압도한 캐빈 스페이시의 징글징글한 카리스마 말고도 그 영화엔 데이빗 핀처다운 어떤 분위기와 품격이 있었다. 그 후로도 [파이트 클럽] [조디악]은 물론 [소셜 네트워크] [밀레니엄] [나를 찾아줘] 같은 영화에서도 핀처 감독의 눈부신 활약은 계속 이어졌지만 특히 TV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와 [마인드 헌터] 제작은 그의 새로운 면모를 과시하는 프로젝트였다. 그 와중에 코로나 19 팬데믹이 발발했고 이제 우리는 역설적으로 넷플릭스를 통해 그의 새 흑백 영화까지 보게 되었다.
[맹크]는 오스 웰즈의 걸작 [시민 케인]의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 허먼 맹키위츠의 이야기를 통해 헐리우드의 전성기와 그 이면을 보여주는 흑백영화다. 어렸을 적 '라이프지'에서 봤던 스프레드 사진처럼 당시는 MGM이나 파라마운트, 20세기 폭스사, 워너 브러더스, RKO 등 각 메이저 영화사마다 배우들이 전속으로 매여 있던 때였고 24살의 천재(실제로 영화에서 전화를 바꿔주기 전 '분더킨트'라고 한다) 오슨 웰즈가 [시민 케인]을 찍기 직전이었다.
영화는 컬러로 화려하게 찍은 뒤 색감만 일부러 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아하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풍긴다. 그 유명한 데이비드 O. 셀즈닉이 스토리 회의를 하자고 해서 맹크와 다른 사람들이 영화사 사무실로 들어가는 장면도 나오고 "나를 들여보내는 클럽엔 가입하지 마라. 후진 곳이니까"라는 그루초의 유명한 농담, '시간이 있었으면 편지를 더 짧게 썼을 텐데.'라는 파스칼의 명언도 인용된다. 그리고 [시민 케인]의 실제 모델인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그의 애인 메리언 도리스도 나온다. 맹크가 영화 속에서 맥거핀처럼 만들어낸 '.로즈버드'라는 말이 사실은 썰매가 아니라 하스트가 매리언의 성기를 부를 때 쓰는 애칭이라는 소문은 헐리우드가 얼마나 지저분한 곳이었는지를 웅변하는 깨알 같은 에피소드다.
[레옹]에서 악질 경찰로 나왔던 게리 올드먼의 연기야 두말하면 잔소리고 [맘마 미아]의 이쁜이 아만다 사이프리드도 미모와 연기 모두 뛰어나다. 하긴 감독이 누군데 연기를 허방으로 하겠는가. 나는 다행히 [시민 케인]을 예전에 보았고 광고나 글쓰기 특강 할 때면 커피 브랜드 '로즈버드'가 어떤 영화 때문에 생긴 건지 아느냐고 잘난 척을 하곤 했는데 이 영화는 그런 사전 지식 없이도 충분히 볼 수 있다. 아니, 사실은 1930년대 미국의 정치 경제 상황을 알면 더 잘 보이고 작가 업튼 싱클레어까지 알면 더 좋겠지만, 사실 그럴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영화라는 건 컴컴한 극장에서든 따뜻한 안방에서든 느긋하게 등을 기대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 '친절한' 예술인 것을. [맹크]는 헐리우드 전성기를 다룬다. 그들이 영화를 얼마나 돈 잘 버는 화수분처럼 생각했는지 알려주는 MGM 영화사 사장의 "관객들은 돈을 내고 추억을 사 가지만 물건은 계속 우리에게 있지. 그게 영화의 장점이야."라는 대사를 소개하면서 리뷰를 끝맺으려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화는 예술이라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 들고, 사업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로맨틱한 장르 아닌가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