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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24. 2020

부부간 대화의 흔한 예

성북동 소행성 부부가 사는 법

어제저녁 잠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맥주 한 병을 꺼내 들고 마루에 있는 아내에게로 갔다. 목이 말라서 한 병만 마실 거라고 하니 아내가 자긴 맥주는 싫다며 와인을 꺼내왔다. 지난주에 인터뷰 하러 왔던 기자님이 선물로 주고 간 놈이었다.

와인 안주로 치즈를 꺼내던 아내가 “참크래커가 있으면 더 좋은데.”라고 말하길래 반팔 티셔츠 위에 조끼 파커만 입고 후다닥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하체는 집에서 입는 ‘곰바지’에 핑크색 수면양말을 신은 채였다. 덜덜 떨며 들어서는 나를 본 편의점 사장님이 “안 더워요?”라고 역설적 농담을 하셨다. 가게 안에는 바로 옆 고깃집 ‘성북동10길’ 사장님이 와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밤 아홉 시가 넘자 가게 문을 닫고 여기로 온 것이었다. 내가 불 꺼진 가게를 보니 가슴이 아프더라고 위로를 했더니 편의점 사장님이 “그래서 지금 여기 와서 영업 방해하고 있잖아.”라며 웃었다. 고깃집 사장님과 편의점 사장님은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 이 정도 농담은 늘 기본이다. 나는 참크래커 하나만 달랑 집어 들고 가 계산을 한 뒤 인사를 하고 집으로 뛰어왔다.

와인은 맛이 정말 좋았다. 나는 아내가 만들어준 치즈플레이트에 와인을 마시며 추억에 젖어들었다.

성준) 생각해 보니 나는 당신을 만나고 나서 인생이 참 획기적으로 바뀌었어.
혜자) 무슨 소리야?
성준) 결혼도 했고, 이사도 했고. 사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식, 만나는 사람들 모두 다 달라졌어. 그야말로 인생이 혁명적으로 바뀐 거지.
혜자) 갑자기 왜 이래?
성준) 아, 그냥......

아내는 내가 말을 멈추고 와인에 집중하자 와인을 천천히 마시라고 주의를 주고는 TV로 넷플릭스를 켜서 어제 보다 말았다는 영화 [사이드 웨이]를 틀었다. 우리는 영화에 나오는 산드라 오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내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서 남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폴 지아메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울러 내가 알렉산더 페인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조지 클루니가 하와이에서 찌질하게 살던 영화 얘기도 했는데 제목이 기억이 안 나서 다시 검색을 했다. [디센던트]였다. [사이드 웨이]는 다시 보는데도 참 재미있었다. 내가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고 했더니 아내가 처음 듣는 소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 책에도 이 영화 얘기가 나온다고 했더니 정말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에필로그에 언급했다고 했더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간절히 원하던 책 출간도 실패하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폴 지아메티에게 와인 여행에서 만난 여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당신이 준 원고를 다 읽어 봤어요. 그깟 출간 못했으면 어때요? 내가 읽어보니 글이 아주 좋던데.” 신이 난 지아메티가 바람처럼 그녀 집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리며 영화가 끝난다.

와인을 다 마신 내가 “맥주나 한 병 더 꺼내올까?” 했더니 아내는 차라리 소주가 더 좋다고 해서 소주를 한 병 꺼내왔다. 소주을 두 병까지 다 마시니 한 시 반이었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데, 걱정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간단한 식사와 배변을 하고 출근을 했다. 동네 고등학교에 와서 방역 근로를 하다 쉬고 있는데 아홉 시 넘어 아내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혜자) 여보. 술이 안 깨.
           김밥 사 와서 라면에 먹음 안 됨?
성준) ㅋㅋ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있어.
           영아네김밥 사갈게.
혜자) ㅇㅇ 

오늘 브런치는 김밥에 라면이다. 좋다. 무슨 라면을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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