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방역 알바 하면서 있었던 일들
나는 지난 9월부터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코로나 19 극복 일자리' 명목으로 방역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아침 7시부터 11시까지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에 교실 출입문과 책상, 라카룸 손잡이 등 학생들의 손이 닿을 만한 곳을 모조리 물휴지로 소독하고 때로는 복도 걸레질도 한다. 다른 분 두 명은 건물 출입구 앞에 책걸상과 난로를 가져다 놓고 등교하는 학생들의 체온을 재고 자가진단 여부를 체크한다(나와 같이 일하던 여성분은 다른 일자리가 생겨서 그만뒀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게 좀 힘들고 보수도 기본급에 불과하지만 일이 어렵거나 고되지 않고 특별히 감시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대로 만족하고 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갑자기 생계가 막연해진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만들어낸 일자리인데 12월 말까지만 진행되는 특별직이므로 이제 거의 끝나간다.
함께 일하는 분들 중엔 대학원생도 있고 운동선수도 있다고 들었지만 평소에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누가 대학원생이고 운동선수인지 그저 짐작을 해볼 뿐이다. 그건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하루는 계단에서 마주친 여선생님 한 분이 "방역하시는 선생님들(학교에선 무조건 선생님이라 부른다) 중에 배드민턴 선수가 계시다고 하던데, 혹시 선생님이세요?"라고 물어서 "그럴 리가요!"라고 대답을 한 적이 있다. 나를 보고 운동선수냐고 묻다니, 저렇게 눈썰미가 없는 분이 아이들을 가르쳐서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친하게 지내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시다. 첫날 대기실에서 '10년 넘도록 학교에서 폴리스로 활동하고 있는 분'이라고 소개를 받았는데 70세가 넘은 연세에도 매일 아침 7시 30분이면 출근해서 학교 여기저기를 순찰하고 때로는 집게를 들고 다니며 휴지도 주우신다. 전에 뭐 하던 분이냐고 넌즈시 물었더니 경찰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와, 경찰이셨으면 별별 사람 다 만나보셨겠네요? 굵직한 사건도 많으셨을 테고."라고 물었더니 "아, 그럼요..." 하고는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다. 정말 경찰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나를 보면 늘 따뜻하게 인사를 해주고 커피믹스나 녹차팩, 홍삼액기스 등등 마실 것도 종종 챙겨주셔서 늘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는 여느 때처럼 아침 11시에 퇴근을 하면서 "내일은 크리스마스니까 안 나오시죠? 그럼 모레 뵐게요."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아, 예."라고 고개를 끄덕이시는 것이었다. 집에 와서 달력을 들여다보니 일요일까지 연휴였다. 그런데도 그런 대답을 하신 걸 보면 그 노인은 평소에 내 얘기를 전혀 듣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황당했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왜 내 얘기를 콧등으로도 듣지 않으시는 거냐고 한번 따져볼까. 아니다. 얼굴 뵐 날도 며칠 안 남았으니 그냥 사이좋게 지내자. 전직 경찰이라는데 함부로 덤빌 수도 없고.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진 김에 책을 읽으러 마루로 나왔다가 이런 얘기를 주절주절 쓰고 있다. 이제 진짜 책을 읽어야지. 근데 조금 있으면 아내가 일어날 텐데. 아,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