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풀무원 낫또를 먹다가 떠오른 생각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내용과 형식도 새로웠지만 제목부터 남달랐다. 몇 년 전 그가 만든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제목은 지금도 수많은 칼럼과 방송 멘트, 자막 등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아마도 그 원조는 '강원도의 힘'이 아닐까 싶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뜯어먹은 풀무원 낫또의 이름은 '실의 힘'이었다(먹어본 사람은 이름이 왜 실의 힘인지 알 것이다). 물어볼 것도 없이 영화 '강원도의 힘'이 아니었으면 생겨나지 못했을 네이밍이다. 낫또뿐 아니라 지금도 마트에 가보면 '국산의 힘' 등 비슷비슷한 느낌의 힘 시리즈가 차고 넘친다. 그래서 홍상수가 그 영화 제목을 지을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강원도의 힘 어때?라고 물어보았다면 어떤 반응이었을까. 글쎄, 조금 이상하지 않아? 강원도에 무슨 힘이 있어. 아무래도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라는 대답이 압도적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 영화 제목은 분명히 홍상수 혼자서 지었을 것이다'였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라는 책 제목도 처음엔 반응이 좋지 않았다. 하긴 요즘 같은 시절에 부부가 둘 다 놀고 있다고 하면 얼마나 걱정이 되겠는가. 그러나 특이하고 드라마틱한 제목이었다. 나도 다른 의미로 좀 걱정은 되었지만 독자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제목이 제일 나쁘다, 라는 믿음 아래 그대로 밀어붙였다. 다행히 책이 잘 팔리고 호평을 받기 시작하자 요즘은 오히려 제목 잘 지었다는 얘기를 자주 듣고 있다.
글쓰기 칼럼에서 내가 왜 영화나 책 제목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시나리오든 기획서든 책이든 뭐든 '새로운 생각'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롭다는 것은 늘 낯설기 때문에 타인이나 그 분야의 마켓에서 좀처럼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광고나 마케팅 회사에서는 FGI(Focus Group Interview)나 설문조사를 중요한 지표로 삼기도 하지만 스티브 잡스처럼 일부러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가끔 SNS를 보면 새로운 책을 내거나 잡지 표지를 정하기 전 제목이나 표지 시안을 사지선다형으로 보여주며 의견을 묻는 경우가 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어서인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글을 쓰거나 아이디어를 낼 때 다른 이들의 의견은 과연 얼마나 들어줘야 적당한 것일까? 남들에게 얘기할 때는 '전적으로 의지하진 말고 그냥 참고만 하라'라고 하는데 그 참고가 어디까지인지는 참 애매하다. 결과에 따라 늘 말이 달라지니까. 그래서 리버럴한 사람도 자기 일이 되면 갑자기 사고가 보수적으로 변하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세상 사는 게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