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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02. 2021

예쁜 서점, 니은서점

연신내에 있는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의 독립서점을 소개합니다

아내가 당근마켓에서 접시를 하나 싸게 샀는데 물건 수령지가 불광역이라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그렇다면 불광역까지 가는 김에 연신내 니은서점에 들러보자고 했더니 아내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좋다고 했다. 불광역에서 어떤 여자분에게 접시를 받아 가방에 넣은 뒤 연신내에 있는 서점까지 걸어갔다. 날씨는 연일 맹추위를 기록하는 중이라 오늘도 추웠는데 다행히 서울에 눈은 내리지 않고 있었다. 니은서점 앞에 가니 노명우 대표가 쭈그리고 앉아 현관문에 열쇠를 꼽아 잠그는 중이었다. "어, 벌써 문을 닫으시나보다..."라며 다가섰더니 아니라고 하며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때 마침 새로 일을 시작하는 '북텐더' 분께 문 잠그는 시범을 보이고 있었던 것 같다.

주택가 골목에 자리 잡은 니은서점은 짙은 녹색 간판과 벽이 예쁜 서점인데 안으로 들어가니 오밀조밀한 책 배열과 인테리어도 좋다. 이곳은 사회과학과 인문학 서적이 메인이지만 소설 등 다른 분야의 책도 있으므로 우라는 가운데 있는 매대부터 훑어가기 시작했다. 아내가 '어차피 살 책이라면 이 책방에서 사라'면서 [다시, 올리브]를 가리켰다. 내가 어제부터 집에 있던 엘리지베스 스트라우트의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읽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하는 권유다. [다시, 올리브]를 챙긴 나는 노 대표의 책 중 베버의 책을 쉽게 풀어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노동의 이유를 묻다]가 재밌을 것 같았으나 다른 읽을 책들이 밀려 있어서 당장은 힘들 것 같았고 대신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를 들었다 놨다 했다. 아내는 천천히 책을 둘러보다가 노명우 대표에게 자신의 이름을 얘기하며 "페이스북에서 가끔 인사를 드리긴 하는데, 아마 잘 모르실 거예요."라고 하길래 나도 "안녕하세요? 저는 편성준이라고 합니다."라고 얹혀서 인사를 드렸다. 노 대표는 요즘은 다들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데 그래도 자세히 보니 윤곽이 기억에 남아 있다고 하며 우리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서점 곳곳엔 사회학자이자 대학교수인 노 대표가 써놓은 '베스트셀러는 팔지 않는 서점' 등의 글과 신문 인터뷰 기사들이 걸려 있었다. 아내가 매대 중앙에 놓여 있던 콜슨 화이트헤드의 [니클의 소년들]이라는 소설이 재밌을 것 같다고 해서 들춰보니 2020 퓰리처상 수상작인데 다른 상도 많이 탄 인기 있는 작품이길래 그것도 챙겼다. 내가 [매핑 도스토옙스키]를 발견하고 김탁환 작가가 전에 재밌게 읽고 있다고 자랑하던 책이라고 했더니 노 대표가 와서 직접 책을 열어 보여주며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정말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이라 설명을 해줬다. 아내는 [인생극장]을 재밌게 읽었다고 하면서 동네 책방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평소 생각을 얘기했다. "여기는 전철역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서점이라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야겠어요.'라고 했더니 노명우 대표는 "예전엔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이 70% 정도였는데 지금은 동네 손님과의 비율이 50 대 50 정도인 것 같아요. 여기가 인구 밀도가 좀 높은 지역이거든요."라고 하며 웃었다. 뒤늦게 생각이 났는지 아내에게 책은 안 쓰냐고 묻자 그녀는  계획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노 대표는 내 책이 새로 나오거든 꼭 연락을 달라고 했다.


나는 [호모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재고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지금은 없지만 배달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했다. 한 권인데도 배달을 해주면 어떡하냐고 아내가 놀라서 물으니 인터넷 서점을 통하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책값을 내고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등을 기록하느라 PC 앞에서 북텐더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노 대표가 오더니 이 북텐더가 오늘 근무 첫날이고 내가 첫 손님이라고 알려줬다. 나는 "아이고, 영광입니다."라며 웃었다. 오늘 산 책 두 권(한 권은 배달해주기로 했으니까)을 가방에 챙기고 나오며 따뜻한 덕담을 나누었다. 안과 밖이 모두 예쁜 서점이었다.


보르헤스는 "천국이 있으면 그곳은 도서관 같은 곳일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천국까지는 아니라도, 그리고 도서관까지는 아니라도 동네 서점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 마음속에 작은 등불을 켜주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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