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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14. 2021

남의 부부생활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다

명로진의 [오늘도 다행히 부부입니다]

나는 결혼이 늦은 편이었다. 아내가 마흔넷, 내가 마흔여덟 살에 결혼을 했으니. 그런데 어쩌면 그래서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둘 다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경험한 뒤에 만나서 젊은 나이라면 있었을 감정의 소모가 적었고 초혼인 나는 물론 재혼인 아내도 상대방에 대한 장밋빛 환상이 없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었으므로 육아 스트레스나 자녀 교육 문제가 없는 건 당연했다. 공처가를 자처하는 나를 보며 아내는 거짓말이라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우리는 제법 잉꼬부부 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다.  


며칠 전 아내가 여성지 인터뷰 요청을 받았는데 주제가 '코로나 19 시대에도 안 싸우고 잘 지내는 부부들'이라고 해서 웃었다. 그때 마침 내 손에는 [오늘도 다행히 부부입니다]라는 책이 놓여 있었기에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이 책은 작가 명로진이 그동안 만났던 부부나 커플들의 인터뷰 내용을 발췌하고 거기에 저자 특유의 통찰과 유머를 더한 단행본이다. 명로진은 질문한다. 왜 많은 부부들이 함께 있어도 더 이상 좋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심지어 남보다 못한 웬수 사이가 되었을까. 한때는 뜨겁게 사랑하고 떨어지기 싫어 급기야 결혼까지 했던 그 사람들인데 말이다. 사이가 안 좋은 부부들을 보면 대개 '서로 억울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 남편이 따라주지 않았고, 내가 더 피곤한데도 아내는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고 바가지를 긁는다. 서로 대화를 안 해서 그렇게 된 것일까. 아니다. 대화 이전에 '생각'을 깊게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부모가 아파트를 사준다고 좋아할 것 없다. 그건 동시에 그 아파트에 시어머니가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는 비밀번호를 같이 내줘야 한다는 것이니까. 꽤 괜찮은 남자가 늦게 결혼을 한다면서 공식 구혼을 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신부의 조건은 '우리 어머니를 잘 모실 것'이었다. 명로진은 놀라서 소리 지른다. 어머니는 네 아버지가 모셔야지 왜 그걸 아내에게 맡겨? 남자의 영혼에는 아이가 산다고? 여자의 영혼에도 아이가 살거든...? 이렇듯 세상사엔 늘 명암이 있고 그건 부부나 커플 생활도 마찬가지다. 결혼이 행복을 담보하지 않듯이 이혼이 불행을 전제하지 않는다, 는 명언도 같은 맥락이다. 나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무엇을 지켜야 할까'만 잘 생각해도 인생 고민의 80%는 해결이 된다고 생각한다.  


명로진은 말한다. 부모나 자식보다 중요한 게 동반자이고 동반자보다 중요한 게 나 자신이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루아는 "부부란 둘 중에 낮은 수준의 사람에 맞춰 살게 마련이다'"라고 했단다. 나 스스로 인격자로 우뚝 서야 모두의 삶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뜻이리라. 여기까지 읽고 나니 이건 부부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책을 펼쳐 들었는데 인생의 진리까지 보너스로 받은 격이다. '세상은 제스처다' '액션의 완성은 리액션' '폭력이라 이름 붙이지 않은 폭력' '싫다는 건 싫다는 거다' '돈 돈 돈..., 돈다 돌아' 등등 목차에 나온 소제목만 보아도 이 책의 진가를 알 수 있는데 정작 명로진은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다는 '이기적인 이유'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인생의 고민들도 글로 써보면 해결점이 보인다는 것을 이미 아는 사람인 것이다. 하긴 그러니 그동안 오십 권이 넘는 책을 썼겠지 싶다(이 책은 그의 생애 52번째 단행본).


'논어'를 가지고 여러 권의 책을 냈던 고전학자답게 명로진은 이 책 중간중간에도 수많은 고전을 발췌해 시대를 앞서간 위인들의 통찰을 들려주는 것은 물론 전직 배우이자 탤런트라서 그런지 현대와 사극을 가리지 않고 드라마/영화들을 불러들여 설명에 활용하다. 특히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인용은 발군의 통찰력이다. 챕터가 끝날 때쯤 선보이는 귀여운 유머들도 좋지만 외국어 표기법에 굴하지 않고 폭스TV를 '팍스TV'라고 쓰는 그 기개도 마음에 든다. 두 권 사서 한 권은 집에서 배우자와 함께 읽고 한 권은 지인들에게 선물하면 좋을 책이다. 제목만 보고 "아니, 뭐 이런 책을..."이라고 하다가도 어느덧 밑줄 쳐가며 읽고 있는 배우자와 지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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