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와의 신경전

토킹 캣 순자 : 밥을 밝히는 고양이 편

by 편성준

어제는 이상하게 늦게까지 잠이 안 와서(술을 잠시 끊기로 해서 그런가) 넷플릭스로 뒤늦게 보기 시작한 김은희 작가의 화제작 [시그널]을 연속으로 세 편이나 보았다.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여보, 한 편만 더 보고 자자. 우리 내일 늦게 일어나도 되지?"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길래 계속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극은 중반으로 흘러 20년 전에 자살한 여성의 남자 친구인 포토그래퍼가 차수현 경사를 찾아와 아무래도 그녀가 살아 있는 것다고 하며 수사를 의뢰하는 에피소드였다. 사건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까지 다 보았더니 새벽 한 시 반이었다.

나는 비로소 하품을 하며 자리에 누웠다. 고질적인 코막힘과 염증으로 냄새를 못 맡는 지경이 이르렀기에 어제는 동네 연세이비인후과에 가서 상담을 하고 (내가 증세 초기에 방치하는 바람에 후각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었고 어쩌면 다시 안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둥 의사선생이 위협소구에 강한 타입이었다) 독한 약을 받아왔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코도 안 막히고 염증도 나아져 한결 숨쉬기가 편했다. 순자가 가슴 위로 올라와 털을 긁어 달라고 가르릉 거리길래 새벽인가 했는데 벌써 6시 반이었다. 나는 지난주 베제카 오일에 가서 했던 박스 포장 아르바이트 얘기를 써야지, 하고 마루로 나왔더니 순자가 따뜻한 에폭시 바닥에 배를 착 붙이고 누워 있다가 몸을 세워 나를 쳐다봤다.

성준) 순자~!

순자) 배고파.

성준) 아이고, 첫마디가 그거냐.

순자) 밥 줘, 배고파!

성준) 뭐 좀 다른 얘기도 좀 해봐. 아침이 지나면 말하는 능력도 사라지면서.


(언제부터인지 순자는 새벽에 잠깐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아내기 사료량을 갑자기 줄었을 때 너무 배가 고파 반대급부적으로 지능이 높아졌다는 주장이지만, 신빙성은 떨어진다)


순자) 너 당인리 책발전소 베스트5에 올랐다고 자랑했더라?

성준) 그런 건 알려야지...

순자) 또 제 책 자랑한다고 욕먹으려고.

성준) 그래서 가끔 니 사진도 올리고 그러잖아.

순자) 아, 허락 없이 내 사진 올릴 생각만 하지 말고 사료나 줘.

성준) 이 식충아!

순자) 밥을 달라, 밥! 사료!!

순자가 몸을 바닥에 굴리며 조른다. 겨울이라 밥을 달라는 시간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느낌이다. 말은 예전부터 짧았고. 그렇다고 사료를 더 많이 줄 우리도 아니다. 순자와의 신경전은 오늘도 계속된다. 괜히 순자 때문에 원래 쓰려던 글을 못 쓰고 이러고 있다. 이제 그 글로 다시 가서 마저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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