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오른쪽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말하는 순자

고양이 순자에게 배우는 아침

by 편성준

한기호 소장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들어갔다가 “젊어서 진보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나이 먹고도 보수가 안 되면 머리가 없는 것”이란 구절을 인용한 이필재 선생의 글을 접했다(『진보적 노인』, 몽스북). 무릇 진보란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고 보수는 가진 걸 지키려는 사람들인데 모든 언어는 변질하기 마련이듯 이젠 진보와 보수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자신의 이익과 기득권만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는 기분이다.


아침에 변기가 막혀 펌핑을 계속하며 골머리를 썩히다가 뚜러펑을 부어 놓고 나와 김영민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를 잠깐 읽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서 살아가지만 그 와중에도 몇몇은 별빛을 바라볼 줄 안다"라고 말했다. 김영민 교수는 '어떤 공부도 우리가 처한 지옥을 순식간에 천국으로 바꿔주지는 않겠지만, 탁월함이라는 별빛을 바라볼 수 있게는 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김 교수가 이렇게 말한 것을 읽으며 성숙한 시민으로서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순자가 테이블 위로 올라와 낮은 꽃병 안 물을 마셨고 나는 책을 집어던진 채 스마트폰을 동영상 모드로 바꿔 그걸 찍었다. 그녀는 요즘 밥그릇 옆에 있는 물보다 꽃병 물을 선호한다. 직접 혀를 사용해 물을 마실 때도 있지만 오늘은 발을 사용해 세수를 겸하며 목을 축이신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손흥민 선수처럼 왼발 오른발을 모두 사용하는 멀티 플레이어 형이다. 우리가 진보니 보수니 하며(사실은 진짜 진보 진짜 보수도 아니면서) 유치하게 보궐선거를 치른 걸 알고는 부러 놀리느라 저러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순자는 착하긴 하지만 동시에 꽤 의뭉스러운 고양이라 그렇다.

**한기호 소장님 수술하신다고 들었는데, 무사히 잘 끝나 얼른 건강 회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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