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순자의 특이한 물 마시기 습관

순하게 살라고 순자라 지었습니다

by 편성준

새벽에 화장실 가느라 깼다가 그냥 마루로 나왔다. 밤에 한 잔 하고 싶었으나 남편은 자고 혼자 마시기 귀찮아 그냥 잤다던(담벼락에 그렇게 쓰고 잤다) 아내가 깰까 봐 나는 살금살금 어둠 속에서 트레이닝 바지를 찾아 입고 나왔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책상에 있던 주민현의 시집을 펼쳐 <네가 신이라면>을 읽고 있는데( 네가 신이라면 첫 페이지에 역사와 종교를 다음 페이지에 철학과 과학을 적고 스물네번째 페이지쯤에 음악과 시도 적겠지 그렇다면 나는 눈을 감고 거꾸로 책장을 넘기겠네) 마침 탁자에 있던 월간 [페이퍼]도 펼쳐 아내가 글 재밌다고 깔깔대던 요조의 <평범한 결혼 생활 관찰기>도 찾아 읽고(결혼 20주년을 특별하게 기념하고 싶어서 썼다는 임경선 작가의 <평범한 결혼생활>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부모님을 생각했다. 고작 3주를 만나고 3개월 만에 결혼했다는 임경선 작가와 달리 우리 부모님은 제법 오래 교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있는데 갑자기 순자가 탁자 위로 펄쩍 뛰어 올라왔다.


할짝할짝할짝할짝, 할짝할짝할짝할짝. 순자가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순자는 특이하게도 밥그릇 옆에 있는 물그릇을 놔두고 탁자 위 꽃병의 물을 마신다. 일반 꽃병보다 낮고 주둥이가 넓고 대접처럼 생긴 꽃병이다. 처음엔 말리고 야단도 쳐보았으나 이젠 포기하고 그냥 거기에 물을 떠다 준다. 고양이들이 물 마시는 소리는 정말 듣기 좋다. 귀엽고도 절박하다. 왜 저렇게 열심히 물을 마시지? 짜게 먹었나.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나는 할 수 없이 정수기 물을 더 떠다 꽃병에 넣어주고 스마트폰으로 그 동영상을 찍었다. 할짝할짝할짝할짝, 마당에서 새벽 새가 울자 움칫 멈췄던 순자가 다시 물을 마신다. 할짝할짝할짝할짝. 온몸을 던져 물을 마시는 순자. 물 마실 땐 물 마시는 것만 생각해. 순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물 마실 때 인생도 생각하고 통장 잔고도 떠올리고 발가락도 긁는데.


순자 물 마시는 소리에 조금 남아 있던 잠이 달아났다. 순자는 왜 꽃병의 물을 마시는 걸까.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하는 노래를 아는 걸까. 아내가 며칠 전 나보고 “근데 요즘 토킹캣 순자는 왜 안 쓰는 거야?”라고 묻던데. 내일은 토킹캣 순자로 이 이야기를 한 번 써봐야겠다. 아, 오늘인가. 그러고 보니 어제 어떤 출판사 대표님하고 편집자님과도 고양이 얘기를 했는데. 순자가 귀엽다고 해서 그런 고양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 얘길 들었나? 물을 다 마신 순자는 꽃병 옆에 놓여있던 ‘스테인리스(유기) 전용 수세미 사용 설명서’를 발로 박박 긁고 있다. 순자가 자꾸 내 인생에 개입하고 있구나. 순자야, 너 이따 나랑 얘기 좀 하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왼쪽 오른쪽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말하는 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