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하루키, 그리고 공처가의 상관관계

침실 독서 풍경

by 편성준

아내는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자주 말한다. 젊음은 좋지만 그때가 주었던 설익음과 혼란스러움의 경험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라는 것이다. 청춘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시간이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여서 그만큼 막연한 시기로 느낀 때문이리라. 어제와 그제 연속 이틀간 손님을 맞느라 몸이 지쳤으므로 오랜만에 '새벽에 일어나 혼자 놀기'를 걸렀던 나는 오늘 아침 아내와 자리에 계속 누워 게으름을 피웠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내가 마루에서 전자책을 가져다가 배지영 작가의 [환상의 서점]을 휘리릭 다 읽고 다른 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아내가 옆에서 스마트폰으로 틱톡을 계속 보고 있길래 "여보, 동영상 대신 책을 읽으면 안 될까?"라고 물었더니 "싫어. 난 틱톡 계속 볼 거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본래의 심성은 착한 편인 아내는 말과는 달리 동영상을 끄고 텍스트로 돌아갔고 나는 예전에 사놓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를 뒤지다가 아내가 하던 말과 비슷한 부분을 찾아냈다.


다시 젊어져서 인생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하겠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뇨, 됐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런 무서운 짓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


내가 반가워하며 이 부분을 큰 소리로 읽어주니 아내는 "아니, 하루키는 왜 날 따라 하고 그래?"라며 신경질이 나는 척을 했다. 하루키가 내 아내를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대문호인 그가 나의 아내를 따라 할 리가 만무하겠지만, 공처가인 나는 "그러게...!"라고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키에겐 미안하지만 만약 둘이 싸우기로 작정한다면 나는 아내 편을 들 것이다. 물론 하루키도 자기 아내 편을 들 것이라는 데에는 추호의 의심이 없다. 코로나 19 시대든 페미니즘 시대든 남편의 자세는 공처가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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