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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30. 2021

눈물 나게 고마운 리뷰

소설가 문영심 선생이 써주신 독후감

작년 10월 말에 책을 낸 뒤 정말 많은 분들이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읽어주시고 독후감이나 추천 글을 써주셨습니다. 숱하게 좋은 리뷰가 많았고 개그맨 김태균 씨가 인스타에 리뷰를 올렸을 땐 판매 곡선이 가파르게 상승하기도 했지만 제가 제일 기뻤던 리뷰는 소설가 문영심 선생의 글이었습니다. 특히,


“나는 편성준이 작가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의 글을 읽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따로 뵌 적도 없고  일체의 인연이 없던 분인데도 과분한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오늘 눈 내리는 성북천길을 산책하다가 문득 선생님의 글이 생각나서, 생각난 김에 여기에 다시 한번 공유를 해야지, 결심을 했습니다. 페이스북에 들어가 보니 선생님은 요즘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책을 읽고 계시다고 하네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편성준

참신하다. 발랄하다. 엉뚱하다. 유쾌하다. 시종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읽다가 어떤 대목에서는 큰소리로 깔깔 웃으며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순간순간 가슴이 찡하고 심지어 눈물이 똑 떨어지기도 했다. 이게 뭐지? 산문집을 읽으며 이런 감상에 빠진 것은 처음이다. 실은 웬만해서는 산문집을 잘 읽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인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가 10년 전의 나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았다면 필시 이 책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남편이 시골에서 ‘노는’것을 선택한 반면 이 책의 저자인 편성준 부부는 서울에서 놀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고 싶은 방식대로 살기 위해서 ‘직장’ 혹은 ‘직업’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불안한 ‘자유’를 선택한 사람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제대로 감정이입이 되었다.

또 하나 이 책의 특별함은 조각 글을 모아놓은 산문집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일관된 스토리텔링을 가졌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 스토리는 러브스토리이다. 나에게 이 책은 윤혜자와 편성준의 사랑이야기라서 흥미로웠다. 드라마 장르로 치면 로맨틱 코미디를 바탕에 깐 시트콤 같다. 잘 나가던 카피라이터인 성준은 자타가 공인하는 비혼주의자였는데 마흔 중반에 혜자를 만나서 어어 하는데 사이에 동거하고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결혼은 자기와 맞지 않는다고 확신하던 사람이 얼떨결에 하는 결혼은 다른 말로 하면 운명의 짝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 부부의 삶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다르면서도 비슷하고 보완적인 짝을 만나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어가면서 웃다가도 가슴이 찡해지는 대목을 여러 번 만났지만 사실은 프롤로그에서부터 눈물이 찔끔 나왔다.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고 원하는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 남편의 결정을 태연하게 받아주는 아내. “그래. 잘 생각했어. 결심하느라 애썼겠네”라고 말하는 아내. 아내는 남편이 진짜로 회사를 그만두고 왔을 때도 진심으로 퇴직을 축하해 주고 한 달짜리 제주도 여행까지 선물해 주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의 결정을 존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아는 나로서는 윤혜자의 마음 씀씀이에 감탄했다. 이 부부의 사랑이 부러우면서도 왠지 눈물겨웠다.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의 사랑은 저절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도 가슴이 뛰는 이유’라는 꼭지를 읽다 보면 그들이 어떻게 계속해서 러브스토리를 만들면서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내는 가끔 금요일 오후에 아무런 예고 없이 토요일 조조영화 티켓을 두 장 산 뒤 스마트폰 메신저로 보내올 때가 있다. 마침 나도 보고 싶었던 영화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반가워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극장에 같이 가고자 하는 아내의 애틋한 마음이다. 극장에 간다는 건 영화를 본다는 것 이상의 의미다. 함께 걷거나 전철을 타고 극장까지 가서 깜깜한 상영관에 들어가 집중해서 영화에 푹 빠지는 게 첫 번째 즐거움이라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뒤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방금 봤던 영화에 대해 나누는 작은 귓속말들은 두 번째로 누리는 즐거움이다. 영화관에서 나와 자연스럽게 시내 음식점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는 데이트는 세 번째 즐거움이다. 둘은 부부지만 이런 순간만큼은 애인이 된다. 극장 티켓 두 장만으로도 이런 설렘을 만드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내가 아는 까닭이고 내가 아직도 아내와 ‘연애’할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 95쪽~96쪽

이 대목을 읽고 눈물이 난 이유를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연애의 무덤이 되어버린 수많은 결혼들이 생각 나서라고나 할까? 자기가 결혼한 상대와 사랑에 빠졌을 때의 최초의 설렘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다른 곳에서 새로운 연애 상대를 찾으려고 가자미눈이 되어 있는 결혼 실패자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남편과의 연애가 시작될 무렵의 절실함을 잃어버리고 남편에게 바가지나 긁는 나 자신이 한심해서였을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정확하고 단정한 문장에도 있다. 편성준은 카피라이터다. 카피라이터는 감각적이고 압축적이면서 구매 욕구를 일으키는 글을 써야 한다. 짧은 글을 쓴다는 것은 긴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울 때도 많다. 카피라이터는 전문적인 글쟁이인 것은 맞다. 그러나 모든 카피라이터가 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편성준은 카피라이터의 감각이 돋보이는 아포리즘 같은 짧은 글도 가끔 쓰지만 꽤 호흡이 긴 글도 무리 없이 잘 쓴다. 편성준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처음 쓴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해 주었다. 그가 쓴 영화나 책에 대한 리뷰는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가 소개한 책이나 영화는 나의 위시리스트에 저장해 두었다. 믿고 보는 리뷰어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편성준과 윤혜자 부부가 계속해서 더 잘 놀기를 바란다. 출판기획자인 아내와 카피라이터 출신의 작가 남편의 감각이 돋보이는 ‘토요식충단’ (벌레 ‘충’자는 아니고 충성한다는 ‘충’)과 ‘독(讀)하다 토요일’같은 기발한 ‘딴 짓’들이 더 재미있기를 바란다. 그런 모임들을 더 만들거나 그런 모임을 기획해 주는 것을 ‘일’로 삼아도 될 것 같다. 부부가 둘 다 놀아도 세상이 두 쪽 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앞으로도 보여주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나는 편성준이 작가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의 글을 읽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가 즐겁게 쓰기 때문에 읽는 사람도 즐거운 것일 게다. 글쓰기가 노동이나 고역이 아니라 즐거움인 작가의 탄생이 반갑다. 그의 첫 책이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나고, 그가 더욱 깊이 있고 감동적인 책을 들고 독자들 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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