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먼저 죽어야 합니다

아내는 외로움을 많이 타니까요

by 편성준


아내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입니다. 그래서 혼자 살 때는 보지도 않는 TV를 틀어 백색소음을 만들곤 했다죠. 제가 글 쓴다고 제주도에 한 달 가 있을 때도 가장 힘든 점은 아내 혼자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왔을 때 아내가 자백하더군요. 당신과 떨어져 지낼 수 있는 시간은 맥시멈으로 딱 2주일 정도인 것 같다고.


그런 아내인데 혹시라도 제가 먼저 죽으면 그 외로움을 어떻게 감당할까 무척 걱정이 됩니다. 저희는 늦게 결혼하는 바람에 아이도 낳지 못했고 원래 낳을 생각도 없어 둘이 사는 걸 당연하게 여겼으니까요. 결혼할 때는 '같이 죽자'가 모토였지만 어떻게 사람 죽고 사는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나요. 그러니 아내가 먼저 죽어야 합니다.


아내가 죽고 나면 어떻게 혼자 남은 시간을 견뎌낼까 생각하면 저 또한 아득하지만 그래도 전 아내만큼 외로움을 타는 편은 아닙니다. 아마 지금처럼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과 영화를 즐기고 전시회장을 찾아다니겠죠. 건강이 허락한다면 술도 마실 테고요. 아, 그때쯤 되면 비로소 공처가의 캘리 대신 '애처가의 캘리'를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땐 아내를 마음 놓고 그리워해도 누가 비웃거나 욕하진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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