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다바이는 간교하게 남을 속여먹는다는 뜻입니다
"혹시, 네다바이라는 말 들어본 사람 있어?"
지난주 회사 사람들과 논현동 별미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피싱 범죄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대뜸 이렇게 물었더니 다들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고 했다. 네다바이는 내가 어렸을 때 <수사반장>이라는 인기 주말 수사극에 출연한 최불암에게서 들은 말인데 '나쁜 간계로 사람을 속여넘긴다'는 뜻의 일본어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땐 그런 말이 공중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던 시절이었다. 네다바이는 몰라도 사기 행각을 다루는 '케이퍼 무비'라는 말은 다들 알지 않느냐 물었더니 그것도 처음 들어본단다. 아무튼 그래서 어쩌다 보니 내가 중학교 때 자전거를 '네다바이' 당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게 되었다. 동료들은 나의 어리석음에 다들 혀를 끌끌 차면서 그 얘기를 들었다.
중학교 삼 학년 때였던가. 나는 집에서 학교가 그리 멀지도 않은데도 순전히 자전거가 타고 싶은 마음에 괜히 통학용 자전거를 한 대 무리해서 샀다. 당시로는 드물게 십이 단 기어가 달린 날렵한 사이클이었다. 운동신경이 둔해서 자전거도 초등학교 후반에야 힘들게 배운 편이었지만 다행히 이런 건 한 번 배우고 나면 시간이 지나도 까먹지를 않는지라 자전거 통학엔 처음부터 별 무리가 없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돌아다니다가 어느 일요일엔가,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기자촌에 살던 초등학교 때 친구 인구를 만나 연신내에서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나만 자전거를 가지고 있는 상태라 자전거를 끌고 인구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는데 미도파백화점 앞 연신내 육교 중간에서 어떤 아저씨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아저씨는 단박에 얼굴이 환해지더니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아이구, 너 어디 가냐?"
"어... 네. 아, 안녕하세요?"
어리숙한 나는 갑자기 나를 너무나 반가워하는 아저씨를 향해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전부터 잘 아는 분인데 내가 순간적으로 못 알아본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아버지 시골 가셨다며..."
"아, 내려가셨다가 어제 오셨어요."
"오, 그래? 잘됐다. 너 이 아저씨 심부름 좀 해라."
"네?"
"아버지한테 뭐 좀 갖다 드려."
"네..."
"너 이름이 뭐더라?"
"성준이요."
"그래. 성준이! 연신내 홍 씨 아저씨가 줬다고 하면 아마 아실 거야."
아버지 시골 가셨던 건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집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홍 씨 아저씨는 나와 인구를 데리고 육교 아래로 내려갔다. 연신내시장 쪽으로 가던 아저씨는 인구에게 내 자전거를 맡기며 미도파백화점 뒷문 쪽에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라 하고 나만 데리고 불광2동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칠순 잔치집에 들어가서 먹을 걸 좀 싸 줄 테니 아버지에게 갖다 드리라는 것이었다. 한참을 빠른 걸음으로 걷던 홍 씨 아저씨는 커다란 대문이 보이는 골목 앞에 멈추더니 갑자기 추리닝 바지를 입고 있는 내 모습을 쳐다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옷이 좀 그렇네... 그러지 말고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라. 아저씨가 금방 들어가서 가져올게. 응?"
"네."
내 옷이 그렇게 창피한 수준 같지는 않았으나 아저씨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아는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황급히 골목 안으로 사라졌고 나는 그 자리에서 모범생처럼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십 분이 지나고 이십 분이 지나도 아저씨는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십 분을 더 기다렸다. 역시 나오지 않았다. 별 이상한 일이 다 있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는 시절도 아니었다. 나는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하는 답답한 마음을 안고 인구나 만나야겠다 하고 미도파백화점 뒷문으로 갔다. 그런데 인구도 없었다. 인구가 자전거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기로 했는데. 이상하다.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집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데 마침 반대편에서 인구가 걸어오고 있었다. 빈손이었다.
"자전거는?"
"아까 그 아저씨 드렸는데?"
"뭐?!"
"그 아저씨가 금방 와서 지금 성준이는 안에서 정신없이 먹고 있으니까 너 먼저 가라고 하더라."
"자전거는?"
"그 아저씨 줬지. 자기가 가져다준다고 하길래."
하늘이 노래졌다. 일 년 간 모아두었던 용돈으로 큰 맘먹고 산 자전거였는데. 어안이 벙벙해진 인구와 나는 서로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갔다. 아마 그때가 내 인생 최초의 사기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세상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서 그 어떤 사람의 말도 좀처럼 믿지 않게 되었다... 였으면 참 좋겠지만 사실은 그러지 못하여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떼인 돈, 흘린 돈, 보증 대납, 미수금 등등 어림 직작만으로도 수천 만원 이상을 꾸준히 날렸다. 그래도 원체 소심하고 인간의 스케일이 작아서 그런지 '억대 피해'는 없었다는 것을 작은 위안으로 삼고 있다.